차등의결권은 비상장 벤처기업이 상장과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이 낮아져 대기업 등 거대 자본으로부터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이 추진됐다.
차등의결권제도가 도입되면 1주 1표의 의결권을 지닌 보통주뿐만 아니라 1주 2표 이상의 다수 의결권을 지닌 주식도 허용된다.
문제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기 위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용 대상기업의 범위를 일반기업으로 확대하느냐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벤처기업 지원대책 발표를 통해 잇달아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정해 엄격한 요건 아래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기업 사이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벤처기업이 아닌 일반기업으로 차등의결권의 확대를 원하고 있다.
경제계도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엘리엇매니지먼트로부터 주주제안을 받는 등 외국자본의 경영권 공격이 빈번해지면서 경영권 방어수단으로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을 향한 해외 헤지펀드들의 공격이 거세지는 만큼 차등의결권의 확대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며 “독일을 제외한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는 만큼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경영권 방어수단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차등의결권제도가 대기업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일반기업으로 차등의결권제도가 확대되는 데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 팀장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일반주주가 견제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일반기업으로 논의가 확대되는 것은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최운열 의원실 관계자는 “일반기업으로 차등의결권 논의가 확대되는 것은 경영권 세습 등 부작용이 크고 많은 시민들이 우려하는 만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일반기업은 물론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차등의결권 도입 자체에 회의적 목소리도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적대적 공개매수 위협 과연 어느 정도인가'라는 보고서에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9년 동안의 공개매수 신고서를 분석한 결과, 총 117건의 공개매수 신고서 가운데 경영권 확보(M&A) 목적의 공개매수는 4건(3.41%)이었고 이 가운데 적대적 공개매수는 코스닥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1 건(0.85%)뿐"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구소 관계자는 “벤처기업의 경영권이 보장되면 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고 고용이 증가한다는 것도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며 “차등의결권 관련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단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성과가 떨어지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정책 팀장은 "혁신적 기업의 등장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정책 지원과 함께 창업 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대기업의 기술 탈취 등 불공정거래행위에서 벤처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차등의결권 도입은 소액주주들의 권익 침해, 창업주 전횡에 대한 우려 등으로 투자 유치를 어렵게 해 오히려 벤처시장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