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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뉴시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증권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일본계 금융회사 오릭스 중심의 사모펀드인 오릭스PE를 결정하면서 5년 뒤 현대증권 지분을 우선적으로 사들일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의 경영권을 다시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오릭스는 지난해 현대로지스틱스 인수에 이어 다시 한번 현대그룹의 백기사 역할을 했다.
오릭스는 과거 STX에너지의 경영권을 STX그룹으로부터 인수해 GS그룹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 적이 있다.
오릭스는 그동안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국금융업에 진출했다. 이번에 현대증권 경영권을 확보하면 함께 인수하는 현대저축은행과 현대자산운용을 합쳐 국내에서도 종합금융회사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오릭스는 또 현대증권의 가치를 올려 현대그룹에 되팔아 STX에너지 때처럼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 오릭스는 왜 현대증권을 욕심냈나?
오릭스는 현대증권 2대 주주인 자베즈파트너스와 함께 사모펀드 오릭스 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를 결정해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승리했다.
오릭스는 현대증권 인수가격으로 1조 원이 약간 넘은 돈을 제시했다. 경쟁자인 국내 사모펀드 파인스트리트보다 몇백억 원을 높게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릭스는 현대증권 인수조건으로 현대그룹이 5년 뒤 현대증권 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조건부 콜옵션을 포함했다. 현대증권이 5년 뒤 특정한 구간의 주가에 도달했을 때 현대그룹이 미리 약속한 금액을 주고 지분을 다시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현대증권은 일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얻은 셈이다. 이종철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 대표이사는 지난달 30일 “현대그룹의 조건부 콜옵션을 계약조건에 넣었다”며 “5년 뒤 특정한 조건과 금액에 따라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오릭스는 현대증권이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줄곧 관심을 보였다. 오릭스는 KT렌탈 인수후보에 포함되기도 했지만 현대증권 인수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KT렌탈 본입찰에 불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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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철 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 대표이사 |
이 대표는 현대증권의 경영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현대증권을 인수해 침체된 증권시장에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현대증권을 인수해 아시아지역에서 증권업계 거점을 마련하려 한다”며 “해외 자산운용회사와 인수합병회사 등 오릭스의 다른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5년 뒤 현대증권 경영권을 다시 되찾을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릭스가 국내 증권업에 뛰어들기보다 현대증권을 되팔아 얻을 차익에 더욱 관심을 두고 현대증권을 인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오릭스는 재무적투자자 입장에서도 현대증권이 가치높은 매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자기자본 2조9746억 원으로 국내 증권업계 4위다. 현대증권은 3분기에 순이익 304억 원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오릭스는 2013년 7월 STX에너지 경영권을 얻은 뒤 그해 12월 GS-LG그룹 컨소시엄에 보유지분 일부를 팔아 투자대비 40%의 차익을 얻었다”며 “현대증권도 5년 뒤 현대그룹에 다시 지분을 넘기면서 이익을 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현정은, 현대증권 되찾을 수 있나
금융권 일각에서 현대그룹이 이번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의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했다는 말도 나온다. 현대그룹이 오릭스가 인수한 현대증권 지분 가운데 29.9%를 후순위채 방식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후순위채는 발행기관이 파산했을 때 다른 채권자의 빚을 모두 갚은 뒤 마지막으로 상환받는 채권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주력 계열사인 현대증권을 포기하지 않고 우호세력인 오릭스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증권 매각 본입찰을 앞두고 교보증권이 보유했던 현대증권 지분 4.74%를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 전량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도 현대증권이 다리를 놓은 것으로 보인다. 나티시스은행은 2006년부터 현대그룹의 우호세력 역할을 하는 등 현대그룹과 관계가 깊다.
이런 여러 일들은 현정은 회장이 그만큼 현대증권에 애착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 회장은 2008년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했을 때도 자금 마련을 위해 현대증권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오히려 지분을 추가매입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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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놓은 것은 현대로지스틱스을 매각할 때의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9월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88.8%를 오릭스가 주도한 사모펀드에 넘겼다. 당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통해 사모펀드의 지분 30%를 확보했다.
그러나 당시 현대상선은 오릭스의 요청에 따라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리를 계약조건에 넣지 않았다.
오릭스는 그뒤 사모펀드의 지분 35%를 롯데그룹에 넘기면서 오히려 롯데그룹에게 나머지 지분도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오릭스는 현대그룹의 백기사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돈의 흐름을 최우선적으로 따를 것”이라며 “현 회장은 현대로지스틱스를 넘길 때와 달리 현대증권을 오릭스에게 매각하면서 현대증권의 경영권을 되찾을 발판을 확실히 마련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을 재건해 앞으로 현대증권을 다시 되살 수 있는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앞으로 5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지만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양 날개로 남은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매각으로 손에 쥐게 될 현금에 상당한 이자를 보태는 규모의 돈을 벌어야 한다.
◆ 국내에서 몸집 키우는 오릭스
오릭스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국내 운용자산 2조3천억 원을 기록했다. 이번에 현대증권을 인수하면 명실상부한 국내 사모펀드투자회사 10위 안에 들어간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릭스는 최근 국내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자산운용회사가 됐다”며 “2012년 STX에너지 지분매각으로 높은 투자차익을 올린 뒤 2년 동안 꾸준히 투자활동을 했던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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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우치 요시히코 오릭스 회장 |
오릭스는 1964년 일본에서 리스회사로 출발해 투자은행과 생명보험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금융회사다. 총자산은 92조 원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27나라에 연결자회사 800여 개를 두고 있다.
오릭스는 2010년 사모펀드인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코리아를 설립하면서 한국에 진출했다. 그뒤 풍부한 자금력과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화약세 현상을 등에 업고 국내 금융시장의 문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오릭스는 지난해 LIG손해보험을 놓고 KB금융과 다투기도 했다.
오릭스는 현재 OSB저축은행과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오릭스렌텍과 오릭스캐피탈 등 할부업 계열사 한국법인도 만들었다. 여기에 현대증권과 함께 묶여서 팔릴 현대저축은행과 현대자산운용을 더하면 국내에서도 종합금융회사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증권이 오릭스에 넘어가면서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에 팔릴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며 “앞으로도 국내 금융회사와 외국계 회사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