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사실상 금감원의 뜻을 거스르는 결론을 내놓은 만큼 수차례 즉시연금 미지급금의 ‘일괄 구제’를 요구해왔던 금감원은 심기가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즉시연금은 매달 보험료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가입자가 보험을 가입할 때 한꺼번에 목돈의 보험료를 내는 상품이다.
보험사가 이를 운용하면서 매달 연금을 주고 가입자가 사망하거나 보험상품의 만기가 돌아왔을 때에 보험료 원금을 돌려주게 된다.
금감원은 삼성생명 약관에 예시로 소개된 최저보장이율이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었던 점과 매달 연금액에 사업비가 공제된다는 내용이 약관에 제대로 명시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이 상품을 가입한 모든 고객들에게 관련 미지급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미지급금 가운데 최저보장이율에 해당하는 부분까지만 책임을 지고 사업비 차감분은 법원의 판결에 따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윤석헌 금감원장이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일괄 구제제도’의 첫 사례로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선택한 만큼 삼성생명의 결정에 이목이 집중됐는데 삼성생명이 사실상 ‘반기’를 든 셈이다.
금감원은 소비자 피해 구제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견지하고 있다.
자살보험금 사태 때에도 금감원은 생명보험사들이 미지급금을 일부만 지급하거나 생명보험사들끼리 담합해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것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삼성생명이 보장한다는 최소 연금액은 대략 370억 원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금감원이 제시한 미지급금 가운데 9.7%가량에 불과하다.
삼성생명이 사업비 공제와 관련한 부분은 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고 한 것을 두고 적은 금액으로 ‘소비자 보호’의 생색만 어느 정도 내면서 큰 금액의 미지급금에는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길 기다리겠다는 의도로 풀이하는 시선도 있다.
자살보험금 사태 때에도 생보사들은 3심까지 3년의 시간을 보내며 결국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곧 삼성생명 즉시연금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자살보험금 사태를 돌이켜보면 금감원은 ‘지급명령’을 내리기 전에 약관을 지키지 않은 사실을 꼬집어 직원과 회사에 징계와 과징금 부과부터 시작했다.
삼성생명이 어쨌든 일부라도 추가로 지급하기로 결정한 만큼 약관에 혼선의 여지가 있었음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금감원이 즉시연금과 관련해 삼성생명 검사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때에도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모든 생명보험사를 대상으로 전수 검사에 착수하며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당시 최수현 전 금감원장은 “생명보험사의 검사 조치를 통해 약관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엄정히 처리해 바로 지급토록 할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삼성생명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난감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윤 원장은 최근 국회 업무보고에서 “법적 근거도 없는데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느냐”는 한 의원의 질책에 “즉시연금과 관련해 보험사들이 금감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검사 등을 통한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원장이 이를 뒤집고 삼성생명에 검사를 나간다면 금감원이 금융회사에 감정적으로 ‘괘씸죄’를 적용했다는 날선 비판이 따를 수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에는 금융회사의 발언권이 보장되는 ‘대심제’ 등 금융당국의 막강한 힘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마련돼 자살보험금 때와 같은 ‘불도저식 명령’을 내리긴 힘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