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정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표적 진보 정치인 노 원내대표의 비극적 사망에는 드루킹 사건과 관련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결정적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김병민 경희대 객원교수는 이날 YTN과 인터뷰에서 “진보정치의 상징처럼 보여졌던 노 원내대표에게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는 스스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루킹 사건에서 노 원내대표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2016년부터다.
검찰은 노 원내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해 드루킹 김동원씨를 입건해 조사했으나 2016년 12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의 계좌 추적을 한 결과 경공모가 5천만 원을 인출했지만 노 원내대표에게 전달은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허익범 특검이 드루킹 김씨의 최측근이자 경공모 일당과 노 원내대표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알려진 도모 변호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도 변호사가 당시 증거를 위조해 무혐의를 받아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노 원내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관련 수사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특검은 17일 도 변호사를 긴급체포하고 18일 정치자금법 위반과 증거 위조 등 혐의로 도 변호사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18일 법원이 도 변호사의 영장을 기각했지만 특검은 금품이 전달된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진술과 물증을 확보했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였다. 노 원내대표가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면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특검이 수사망을 좁혀오고 연일 노 원내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거론되자 심리적 부담이 극에 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노 원내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한 데는 자칫 스스로 때문에 그동안 키워온 한국 진보정치가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노 원내대표의 인격으로 볼 때 무너져내린 명예와 삶, 책임에 대해 인내하기 어려워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정의당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에 맞설 정도로 높아진 상태라 부담은 더 컸을 수도 있다.
노 원내대표는 고려대 재학 당시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진보정치연합, 통합민주당,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정의당 등 비주류 진보정당에서 꾸준히 정치활동을 이어가며 소신을 지키는 행보로 높이 평가받았다.
최근에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관련 여러 의혹들이 불거지는 가운데 국회 특수활동비를 향한 국민적 논란이 커지자 “국회도 특수활동비를 폐지해야 한다”며 석달치 특활비 3천 만원을 모두 반납하고 의회 정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정의당이 최근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급성장하는 등 진보정치에 가능성과 기대감이 커지는 데 항상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 서왔던 노 원내대표의 대중적 인기와 높은 평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정의당이 공개한 유서에서 노 원내대표는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며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국민 여러분께 당부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