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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숍 대명사가 됐나

김수진 기자 ksj01@businesspost.co.kr 2015-01-23 09: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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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양품,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숍 대명사가 됐나  
▲ 마쓰이 타다미쓰 무인양품 회장

스웨덴의 가구공룡 이케아가 국내에서 광명점을 연 뒤 라이프스타일숍 열풍이 뜨겁다.

이에 따라 신세계인터내셔날, 이랜드를 비롯한 국내기업들이 라이프스타일숍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숍은 의식주 생활형태를 매장에 재현해 놓는다. 이를 통해 일상에 필요한 필요한 모든 것을 판매한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면서 새로운 수요도 창출하는 것이다.

국내기업들이 라이프스타일숍에 뛰어들면서 반드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회사가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숍 브랜드인 무인양품이 그 주인공이다. 무인양품은 도장이 찍혀있지 않는, 곧 브랜드가 없는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무인양품은 한국에도 상륙해 있다. 국내에 1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합작법인인 무지코리아는 롯데상사가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을 비롯해 롯데그룹의 유통채널을 통해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무인양품은 왜 라이프스타일숍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을까? 무인양품은 왜 라이프스타일숍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을까?

◆ 무인양품이 주목받는 이유

무인양품이 국내 라이프스타일숍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이유는 먼저 명확한 콘셉트다.

라이프스타일숍은 생활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취급하기 때문에 품목에서 차별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차별화는 브랜드 콘셉트에서 이루어진다.

이케아의 경우 콘셉트의 특징은 ‘스웨덴스러움’이다. 이케아는 이런 콘셉트를 스웨덴을 대표하는 파랑, 노랑의 색깔과 함께 스웨덴어 제품이름으로 구현한다.

국내기업들은 대개 라이프스타일숍의 콘셉트를 ‘북유럽풍’, ‘모던함’ 등으로 내세운다. 그러다 보니 차별성이 없다.

무인양품은 ‘브랜드 없음’과 ‘좋은 물건’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구축했다. 무인양품의 제품에 로고가 없다. 유행에 민감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무인양품의 제품을 인지한다.

무인양품의 제품은 단순한 디자인을 내세운다. 무인양품의 제품은 어디에나 어울린다. 소비자들은 무인양품의 제품이 “내 취향대로 쓸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평가한다.

가령 무인양품의 인기상품인 노트는 앞뒤가 없고 위아래도 없다. 가구도 책장으로 써도 되고 식기 수납기도 써도 된다. 그냥 수납할 수 있는 가구다. 무인양품의 히트상품인 스탁 셀프 박스는 정방형 박스의 형태인데 여러 개의 박스를 원하는 대로 맞추어서 사용할 수 있는 수납형 상품이다.

  무인양품,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숍 대명사가 됐나  
▲ 무인양품(MUJI) 매장

◆ 무인양품은 어떤 브랜드인가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은 1980년 일본 대형 수퍼마켓 체인인 세이유의 자체브랜드(PB)로 탄생했다. 당시 가정용품 9개, 식품 31개의 품목을 팔았다.

세이유에서 1988년 독립해 ‘양품계획’이라는 회사이름으로 영업권을 양도받았다. 이때부터 무인양품 브랜드의 영업은 시작됐다.

무인양품은 1990년 패밀리마트와 자본을 제휴하고 취급상품 수를 대폭 늘렸다. 1991년 런던에 첫 해외매장을 열며 해외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에서 1990년대의 경우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릴 정도로 불경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무인양품은 ‘이유 있는 저렴함’을 내세우며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무인양품은 1999년 매출 1066억 엔, 경상이익 133억 엔을 달성했다.

◆ 마쓰이 타다미쓰, 오늘의 무인양품을 만들다

무인양품은 2001년 위기를 맞았다. 무인양품은 그해 적자를 냈다.

이 위기를 혁신의 계기로 삼고 오늘의 무인양품을 만들어낸 인물이 있다. 그해 사장으로 취임해 지금은 양품계획 회장으로 있는 마쓰이 타다미쓰(66)다.

그는 1973년 도쿄교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세이유에 입사해 18년 동안 일했다. 양품계획으로 1991년 자리를 옮긴 뒤 HR인사부장, 무인양품사업부장을 거쳤다.

그가 사장이 된 2001년 ‘무인양품은 이제 끝’이라는 말이 업계에서 나돌았다. 무인양품은 당시 급성장하기 시작한 셀렉트숍과 SPA브랜드 공세에 밀리고 있었다.

마쓰이 회장은 당시 무인양품의 병폐를 현실에 안주하는 경영에서 찾았다. 무인양품은 계획없이 대형점포를 늘렸고, 매뉴얼없이 점포경영을 점장에게 맡기고 있었다.

“1995년 기업공개(IPO) 뒤 '무인양품다움'을 잃었다. 매출과 이익이 늘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조직이 경직화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무인양품 제품 담당자는 일본 산간지역을 샅샅이 돌며 소재를 찾곤 했으나 그런 열정이 사라졌다. 임직원들 간에 편 가르기와 줄 서기 등 사내정치도 횡행했다.” 마쓰이 회장의 말이다.

마쓰이 회장은 이런 병폐를 뜯어고치기 위해 온힘을 쏟았다. 경영에서 손실을 최소한으로 하고, 누구나 보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었다. 브랜드 콘셉트도 바꿨다.

  무인양품,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숍 대명사가 됐나  
▲ 마쓰이 타다미쓰 회장
마쓰이 회장은 매장을 내기 전 정확하게 매출을 예상해 손실을 최소화했다. 매장을 내도 되는 건물인지를 판단하는 ‘출점 기준서’도 만들었다.

무인양품이 중국에서 매장을 낼 때 적용한 기준서를 보면 상권 인구를 매장이 들어설 후보지의 행정구역 인구에 따라 5단계로 나눠 평가한다. 지하철역에서 매장까지의 거리, 주차장의 넓이, 슈퍼마켓의 면적 등도 모두 점수로 산출해 평가한다.

마쓰이 회장은 매장 매뉴얼을 끊임없이 보완했다. 그는 “어떤 작업이라도 잘 할 수 있는 법칙이 있는데, 이를 발견해 표준화한 것이 매뉴얼”이라고 말했다.

무인양품에 ‘무지그램’이라는 매뉴얼이 여러 권 있다. 이 책의 내용은 계산대에서 인사법, 잔돈을 주고받는 방법, 상품 진열법, 아르바이트생의 노무계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매뉴얼의 일본어 버전은 무려 1600페이지에 이른다. 무인양품은 이 매뉴얼을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해 활용하고 있다.

마쓰이 회장은 브랜드 콘셉트를 과감하게 수정했다. 마쓰이 회장은 무인양품의 콘셉트를 ‘이유있는 저렴함’에서 ‘고품질, 기본, 창조적 생략’으로 바꿨다.

무인양품은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기능이나 장식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유명 디자이너를 고용해 디자인에 힘을 더욱 줬다. 디자인으로 ‘이것이 좋다’가 아니라 ‘이것이면 충분하다’라는 느낌을 전달했다.

마쓰이 회장의 혁신으로 무인양품은 2002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였다 2005년 매출 1401억 엔, 경상이익 156억 엔으로 당시 최고수익을 달성했다. 2007년 매출 1620억 엔, 경상이익 186억 엔을 기록했다.

무인양품은 2008~2010년 유니클로가 저가공세를 펼치면서 의류매출이 하락했다. 그러나 무인양품은 마쓰이 회장이 재정립한 콘셉트로 다시 돌아가 매출을 회복했다. 천연 소재의 단순한 디자인 상품에 주력했다.

무인양품은 2013년 매출 2055억 엔(약 2조400억 원), 영업이익 194억 엔(2286억 원)을 냈다.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25.7% 증가한 것이다.

◆ 하라 켄야, ‘노 브랜드(No Brand)’를 디자인하다

무인양품(無印良品)은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곧 브랜드가 없는 좋은 물건이라는 뜻이다. 무인양품은 브랜드가 없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우는 브랜드다.

무인양품 제품의 특징은 간결함에 있다. 기본적이고 보편적임을 추구한다. 무인양품의 이런 콘셉트는 무엇보다 제품의 디자인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무인양품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하라 켄야는 2001년 8월부터 무인양품 디자인의 수장으로 일했다.

하라 켄야는 무채색의 배경에 단순하게 제품을 배치했다. 흰 바탕 위에 흰색 냉장고를 넣고 바탕 한 귀퉁이에 로고를 작게 넣었다.

  무인양품,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숍 대명사가 됐나  
▲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
하라 켄야는 이런 방식으로 무인양품의 ‘단순함’이라는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그는 ‘비어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했다. 대표적 사례가 무인양품의 포스터 ‘지평선 시리즈’다.

하라 켄야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 위에 무인양품의 로고를 얹었다. 이 포스터는 배경과 무인양품 네 글자가 전부다.

하라 켄야는 이렇게 말했다. “비어있다는 것은 모든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잠재성을 내포한다. 지평선은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있는 장소다. 브랜드, 제품, 디자인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 세계적 브랜드, 무인양품

무인양품은 세계 23국에 200여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 14개 매장을 두고 있다.

무지(MUJI)코리아는 2004년 12월 설립됐다. 무지코리아 지분은 일본의 양품계획이 60%, 롯데상사가 4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무지코리아는 롯데백화점을 비롯한 롯데그룹의 유통채널을 통해 매장을 확대해 왔다.

무지코리아의 매출은 2011년 232억 원에서 2013년 400억 원으로 증가했다. 2년 새 두 배가량 늘어났다. 지난해 1~6월까지 매출은 2013년 보다 130% 늘었다.

무지코리아는 2017년까지 매장을 30개로 확대하고 매출 1천 억 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야마모토 유키 무지코리아 대표는 “롯데그룹 외 다른 유통채널과 협업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매장을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무지코리아는 ‘가격이 비싸다’는 한국 소비자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2013년 국내 판매가격을 조정하기도 했다. 물류도 바꿔 중국이나 대만에서 만든 상품은 일본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들여와 비용을 낮췄다.


무인양품은 올해 북미와 인도에서 매장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인양품은 지난해 11월 캐나다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현재 1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2017년까지 15~19개로 늘려 매출을 2배인 60억 엔으로 키우려고 한다.

무인양품은 인도시장도 진출한다. 올해 델리니 뭄바이에 1호점을 내고 그 뒤 3년 동안 모두 5개의 매장을 열기로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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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양품 제품 광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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