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이 채용비리 의혹을 털어내기 위해 김경룡 대구은행장 내정자의 선임절차를 뒤로 미루고 있다.
‘CEO(최고경영자) 리스크’에 시달렸던 만큼 새 출발을 앞두고 경계하는 모습이지만 사전에 무리하게 선임절차를 밟으면서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구은행은 대구지검이 4일 이전에 김 내정자와 관련된 수사내용을 내놓을 것으로 판단해 김 내정자의 선임안을 다룰 임시 주주총회를 4일로 잡았지만 검찰의 태도 변화에 따라 임시주총 일정을 뒤로 미뤘다.
검찰은 6월 초에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막바지 수사에 힘을 쏟으면서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야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점쳐진다.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BNK부산은행, DGB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은행 5곳의 채용비리를 수사해온 각 지방검찰청의 수사 결과를 대검찰청이 종합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은행 이사회는 검찰 수사 결과에서 김 내정자가 대구은행 채용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되면 그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는 만큼 선임을 강행하는 데 부담을 느낌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는 경산시 시금고 담당 공무원의 자녀를 대구은행에 특혜채용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김 내정자도 행장에 오르기 전에 채용비리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털어버리겠다는 의지를 직접 이사회에 전달했다.
김 내정자는 “떳떳하고 투명한 상태에서 취임하고 싶어서 직접 이사회에 주총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은행 이사회와 김 내정자 모두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의 비자금 조성과 채용비리 혐의 등으로 그룹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 만큼 불확실성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검찰이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강경한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구은행 이사회가 이미 김 내정자가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선임절차를 강행했다는 비판에서는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검은 5월14일과 5월29일 두 번에 걸쳐 김 내정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내정자는 5월18일 행장에 내정됐다.
대구은행 노조와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행장 후보자들의 채용비리 의혹이 말끔히 해소될 때까지 선임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구은행 이사회는 선임절차를 강행했다.
대구은행 이사회는 김 내정자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던 데다 검찰 수사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었던 만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은행 이사회가 뒤늦게 주주총회 일정을 바꿨지만 이미 최종후보가 된 김 내정자가 채용비리와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면 그 후폭풍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박 전 회장의 공백에 따른 ‘CEO 리스크’로 내홍을 겪었던 대구은행이 또 다시 채용비리로 최고경영자가 구설수에 오르게 된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 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조직 쇄신과 경영 안정화를 향한 길은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며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의 그룹 정상화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