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놓고 주주총회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시선이 몰린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에 찬성한 뒤 홍역을 치른 만큼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16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뼈대로 하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의견을 내면서 이제 시선은 국민연금의 선택으로 집중되고 있다.
투자업계는 애초 국민연금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면서도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중시할 것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미국 글래스 루이스와 ISS 등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사 2곳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안에 반대하면서 국민연금의 고심이 깊어지게 됐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에 따라 반대표를 던지면 문제가 쉽게 풀릴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국민연금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을 강조해 왔는데 4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안에 반대의견을 밝힌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여론도 외국 투기자본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안에 반대하는 데 우호적이지 않다.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외국 투기자본이 과거 한국에서 이른바 ‘먹튀’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이들이 또다시 미래가치에 따른 장기이익보다 단기이익에 집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재 1%대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들고 있으며 보유기간도 6개월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2017년 대우조선해양의 지원을 결정할 당시 ‘국민 노후자금의 선량한 관리자로서 기금의 장기적 이익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기금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국민연금이 기금의 장기적 이익을 주요 투자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현 상황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안에 반대표를 던지기 쉽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고 세계 양대 의결권자문사 2곳이 반대의견을 낸 상황에서 마땅한 근거도 없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부담스럽다.
어떤 선택을 해도 부담이 있는 만큼 국민연금은 의사결정의 명분과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기금운용본부의 내부 의사결정기구인 투자위원회에서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찬성표를 던졌다가 홍역을 치렀다.
▲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왼쪽)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투자업계는 국민연금이 이번 사항을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보건복지부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기존에는 내부 투자위원회를 통해야지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안건을 부의할 수 있었지만 3월 의결권 행사지침이 바뀌면서 3인 이상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이 요구하면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치지 않고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안건을 다룰 수 있게 됐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정부(2명), 기업·사용자단체(2명), 노동자(2명), 지역가입자(2명), 연구기관(1명)의 추천인사 9명으로 구성되는 만큼 내부 투자위원회보다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권고가 국민연금의 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나온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민연금과 공식적으로 의결권 자문계약을 맺은 곳이다. 국민연금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권고도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공식적으로 용역계약을 맺은 만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의견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릴 수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16일 권고안을 국민연금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과 관련해 확인해 줄 수 있는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1분기 기준 현대모비스 지분 9.82%를 들고 있는 2대주주로 사실상 이번 합병안 통과와 관련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따른 분할합병 안건을 의결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