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수술대에 올린다.
공정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재벌기업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고치겠다는 것이다.
‘
김상조 방식의 재벌개혁’이 국내 재벌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김상조,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재벌개혁 속도
8일 재계에 따르면
김상조 위원장이 ‘공정거래법제 개선 특별위원회’를 통해 추진하려는 재벌개혁정책이 과거와 비교해 매우 강도 높은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17년 6월에 이른바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에 오른 뒤 약 10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그동안 재벌기업에 최대의 자율권을 줘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등을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
때로는 기업들의 불공정행위가 발견되면 조사를 진행하는 방법으로 기업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방법도 썼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3월 중순에 시장경쟁의 규칙을 선진화하겠다는 목표로 공정거래법을 28년 만에 전부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재벌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재벌기업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만으로는 재벌 시스템의 완전한 개혁이 어렵다고 보고 재벌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을 현재 시장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손보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에 쏠린 경제 집중력을 억제하고 불공정한 행위들을 근절하는 데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의 방점을 두고 있다.
공정거래법제 개선 특별위원회가 논의할 17개 주요 과제 가운데 경쟁법제와 관련한 과제가 6개, 기업집단법제와 관련한 과제가 5개 포함된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공통과제로는 경제력 집중 억제규율과 경쟁 제한행위 규율을 체계적 정비 등의 법률 구성체계 개편을 설정했다.
경쟁법제분과에서는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과 담합, 불공정거래, 기업결합 개선사항 등의 경쟁법 현대화 사항을 다룬다. 기업집단법제분과는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개편하고 지주회사 제도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 재벌개혁 핵심은 ‘지배구조 개선’
기업집단과 관련한 문제를 손보겠다는 계획에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효성과 현대산업개발 등 많은 대기업집단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선언하며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지배회사체제로 지배구조를 바꾸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만으로 재벌기업들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만은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주회사체계가 복잡한 순환출자로 유지되던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한다는 평가가 있지만 지주회사로 전환이 오히려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가 브랜드 수수료와 부동산 임대료, 경영컨설팅료 명목으로 계열사들로부터 많은 이익을 거둬들이고 이를 배당해 총수 일가에 이익이 돌아가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법에서는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만 보유하면 되는데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게 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문제가 있다고 파악되는 관련 제도에 대해 현재보다 높은 수준의 기준을 세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공정거래법 제도 개정과 관련한 과제에도 ‘자회사 지분율 요건 개편’과 ‘기업집단 지정제도 개편’ 등이 포함돼 있다.
공정위는 이미 현재 62개 지주회사를 대상으로 매출과 거래현황 자료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자회사 주식의 의무보유비율을 상향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한 제도도 수술 대상이다. 그동안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에 기업의 내부일감을 몰아줄 때 이를 입증해 제재하기 위한 방법이 까다로웠는데 부당성 입증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규제 대상이 되는 회사의 지분율 요건도 조정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재벌기업의 ‘꼼수’ 시도도 원천적으로 차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 김상조, 자율적 결정 유도에서 법 테두리 고치는 작업 시작
김 위원장이 재벌기업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미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감시단 단장, 경제개혁센터 소장으로 일할 때 했던 발언들로 모두 확인된다.
하지만 실제 경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정부에서 경제검찰로 불리는 조직의 수장을 맡게 되면서 김 위원장이 재벌개혁에 느끼는 부담감은 가중됐다.
재야에서 재벌개혁을 외쳤던 것과 달리 실제 법 테두리 안에서 재벌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 느끼는 무게감을 상당히 다르게 인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3월 초에 한 언론사 주최로 열린 CEO조찬세미나에서 “재벌개혁 성공을 위해 과거 정부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되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성공한 길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고 그래서 저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가 재벌개혁에 실패했다는 원인을 살펴 재벌개혁을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절박함의 표현으로 읽힌다.
김 위원장은 세미나에서 “뭐뭐 하지마 하는 식의 금지 위주 사전규제 입법을 개혁 수단으로 생각하는 과거 생각들을 벗어나 다양한 정책 수단의 최적조합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개혁 목표는 선명한 슬로건 방식으로 제시해선 안되고 필요성에 따라 단기와 중기, 장기로 나눠 우선 순위부터 선택과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9월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전명 개정만으로 재벌개혁의 큰 그림이 모두 그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미 김 위원장 스스로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후부터 꾸준히 재벌들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해온 만큼 이제는 재벌들의 불공정한 행위들을 법으로 제한할 수 있는 테두리를 다듬는 작업에도 착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