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기회 내던진 재벌가 3~4세들  
▲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건은 재벌 자녀들의 경영세습이 안고 있는 악습을 태양 아래 그대로 드러내 보여줬다.

하지만 오너의 자녀로 무임승차 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 걷는 재벌가의 2~3세들도 꽤 있다.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두산가의 4세인데도 광고인의 길을 걸으며 입지를 다졌다. 재벌가 자녀 최초로 군인을 택한 SK가의 최민정씨도 올해 주목을 받았다.

재벌가 3세지만 벤처에 답이 있다며 벤처투자회사를 세운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와 비영리 재단을 이끌고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 정경선 루트임팩트 대표도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그들만의 길을 걷고 있다.

◆ 오리콤 구원투수로 영입된 두산가 4세 박서원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은 다른 재벌가 자녀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해외 유명 광고제에서 상을 받으며 ‘광고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두산그룹의 아들인 것이 알려진 뒤에도 스스로 만든 독립 광고회사인 빅앤트를 떠나지 않았다.

박 부사장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박 부사장은 2009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주요 광고제를 휩쓸며 광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박 부사장이 박용만 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려졌다.

그가 두산그룹의 4세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두산그룹의 광고계열사인 오리콤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계속 빅앤트에 남아 자리를 지켰다.

박 부사장은 지난 10월 독립광고의 길을 접고 오리콤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재벌가 자녀처럼 ‘낙하산’은 아니었다. 광고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입지를 다진 상황에서 오리콤에 영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 부사장이 오리콤에 입사하면서 그가 본격적으로 두산그룹의 후계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부사장은 박용만 회장의 두 아들 가운데 장남으로 두산 지분을 1.96%를 갖고 있다.

박 부사장이 오리콤의 실적부진을 만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경우 그의 입지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리콤 내부에서 박 부사장에 거는 기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5월 콘돔 제조업에도 뛰어들었다. 박 부사장은 “늘어나는 미혼모를 보면서 청소년들도 콘돔을 구입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오리콤에 입사해 부사장이라는 직책을 단 뒤에도 콘돔사업에 힘쓰고 있다. 박 부사장은 길거리에서 직접 콘돔을 나눠주며 홍보에 나서는 등 다른 재벌가 자녀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콘돔사업에 대해 “영리사업이지만 비영리적 가치를 갖고 운영하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수익도 창출해 지속가능한 사회적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박 부사장은 “오리콤에서도 규모의 경쟁을 추구하기보다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좋은 광고 캠페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유학을 마치고 경영수업에 나서는 재벌가 자녀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정원 미달 상태인 단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연달아 학사경고를 받은 뒤 자퇴했다.

박 부사장은 그뒤 미국의 작은 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27살 때 다시 뉴욕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당시 만난 친구들과 함께 2006년 빅앤트 인터내셔널을 설립해 광고인으로서 첫 걸음을 뗐다.

얼마 뒤 옥외광고로 세계 5대 광고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30개 상을 휩쓸었다.

◆ “벤처에 답이 있다”는 LS가 3세 구본웅

실리콘밸리에서 벤처투자회사를 이끌고 있는 재벌가 3세도 있다. 바로 LS가 3세인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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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
포메이션8은 최근 두 번째 펀드의 모금을 완료했다. 구 대표는 이 자금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아시아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계획을 세웠다.

구 대표는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외아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구 대표는 서울 상문고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했다. 구 대표는 재벌가 출신으로 드물게 사병으로 복무했다.

구 대표는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을 다녔다.

구 대표는 대학원을 마친 뒤에도 현지에 남아 창업을 결정했다. 대다수 재벌가 자손들이 그룹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는 것과 다른 선택이었다.

구 대표는 학부시절 여섯 번 벤처기업 창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는 대학원 졸업 뒤 벤처투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구 대표는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한 지 2년여 만에 총 1조 원 규모의 투자금을 모으는 등 실리콘밸리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가 이끄는 포메이션8은 그동안 실리콘밸리 30여 개 기업에 2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지난해 오큘러스VR에 1250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올해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1억3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는 왜 벤처기업에 투자하느냐는 질문에 “답은 벤처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존에 해 오던 산업을 바탕으로 성장목표를 이룰 수 있는 대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창업가들 스스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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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선 루트임팩트 대표

◆ 사회적 기업 지원하는 현대가 3세 정경선


사회적기업을 만들려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현대가 3세도 있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장남인 정경선(29) 루트임팩트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정 대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다.

그는 2012년 루트임팩트를 만들었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적기업을 만드려는 젊은이들을 발굴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이다.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에게 자문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 대표는 설립 당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며 “선한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고 말했다.

루트임팩트는 사회공헌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을 꾸준히 돕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사회적기업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선발해 사업구상부터 수익모델 수립까지 모든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진행하고 있다.

정 대표에게 항상 곱지않은 시선이 따라다닌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의 허영심이나 취미는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정 대표는 그때마다 “그런 시선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진정성을 갖고 묵묵히 하다보면 언젠가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루트임팩트는 기부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아버지 정몽윤 회장은 루트임팩트의 가장 든든한 기부자다. 정 대표는 “부모님 도움은 딱 3년만 받기로 했다”며 “새로 시작하는 사업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컨설팅 등 외부 용역사업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무임승차 기회 내던진 재벌가 3~4세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딸 최민정 소위가 지난달 임관식을 마친 뒤 꽃다발을 안고 가족들과 즐거워 하고 있다.<뉴시스>

◆ 재벌가 최초로 직업군인 선택한 SK가 3세 최민정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딸 최민정(23)씨도 올해 주목받았다.

최 씨는 지난 9월 해군사관학교에 입소해 11주에 걸친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달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대기업 오너 자녀 가운데 유례가 없는 일이다. 최씨를 두고 정치권에서도 “신선한 충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특히 함정승선을 지원해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해군 관계자는 “여성으로 육상 근무 대신 배를 타려고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함선을 타게 되면 2주 이상 외부와 연락도 끊고 잠도 푹 자지 못하는 등 상당히 고된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최씨는 중국 베이징대를 졸업한 뒤 지난해 중화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 판다코리아닷컴을 만들어 부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최씨는 중국 유학시절부터 학원강사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등 자립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씨의 어머니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은 “우리 아이들이 남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단지 부모가 특별하다고 해서 그게 대단한 일처럼 보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현재 진해 해군교육사령부에서 함정승선 장교업무 교육을 받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