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처음으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역할을 분리하는 새로운 경영체제를 실험한다.
이사회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해 대표이사를 견제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왼쪽)과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
하지만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과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등 그룹 내 영향력이 높았던 핵심 경영진이 이사회 의장을 맡기로 한 대목을 놓고 부정적 시각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18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에 따르면 3월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상훈 사장 사내이사 선임과
최치훈 사장 재선임 안건이 의결된다.
이 사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연말인사에서 세대교체 흐름에 맞춰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 사외이사들의 추천을 받아 올해부터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최 사장은 이사회 의장 보직을 현행대로 유지하며 대표이사에서 사임한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각각 3명의 대표이사를 모두 교체하는 대규모 경영진 세대교체에 나서는 만큼 선임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올라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사장은 재무 전문가로 이전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오너일가의 높은 신임을 받았다. 최 사장도 외부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오너일가 측근으로 꼽힌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다른 사람이 맡는 것은 외국기업들이 경영 투명성과 이사회 독립성 확보를 위해 일찍이 도입한 방식이다.
이사회가 CEO의 권한과 결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외국계 기업 경영자 출신 사외이사도 영입하며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이사진을 구축하려는 시도에도 공을 들였다.
삼성전자에는 외국계 IT기업인 키스위모바일의 김종훈 회장이, 삼성물산에는 필립 코쉐 전 GE CPO(최고생산성책임자)가 사외이사 후보에 오른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 강화를 위해 글로벌 기업들의 선진적 사례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투명경영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단계적 발전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계열사 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였던 이 사장과 최 사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남게 된 점은 이런 노력이 다소 힘을 잃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기업문화 특성상 선임 경영자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면 신임 대표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 이전 이사회 구성과 큰 차이가 없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 새 사외이사로 내정된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 김선욱 전 이화여대 총장, 박병국 서울대 교수(왼쪽부터). |
외국 기업들은 이런 문제를 고려해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에 오르는 사례도 많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최 사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총괄했던 당사자로 논란에 오른 인물인 만큼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는 권고도 내놓았다.
이번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의 3월 주주총회에서 표결을 진행하는 주주들의 손에 달려 있다. 일부 주주가 이런 점을 우려해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를 처음 도입하는 실험단계인 만큼 당분간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이사회 다양성 확보 노력에 더해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의 권한과 역할 강화를 검토하는 등 다양한 개선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