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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그룹 경영자의 최고자질은 다양한 지식, 풍부한 경험, 철저한 전문성이다. 경험도, 지식도 없는데 자동적으로 그룹 경영자가 될 수는 없다. 경영자 자리는 쟁취하는 것이지 굴러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세 자녀의 경영권 승계를 놓고 이렇게 말했다.
조 회장은 이 말대로 세 자녀가 한진그룹의 주력회사인 대한항공의 울타리에서 경쟁하면서 그룹의 주요 회사의 경영을 맡는 방식으로 후계수업을 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으로 이런 후계구도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의 모든 직책을 비롯해 모든 계열사의 대표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에서 호텔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왔다.
조 회장에게 더욱 뼈아픈 것은 조 전 부사장 사건으로 재벌가 2~3세들의 경영승계 무임승차에 대한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을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시키려면 큰 부담을 안아야 한다.
더욱이 이번 사건이 한진그룹의 족벌경영과 경영세습 논란으로 옮겨붙으면서 조원태 부사장이나 조현민 전무에게로 불똥이 튀고 있는 점은 조 회장으로 하여금 후계구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고 있다.
◆ ‘조현아-조원태-조현민’ 경쟁구도 붕괴
조 전 부사장 사건은 한진그룹의 후계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조 전 부사장은 맡고 있던 계열사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까지 모두 내놓은 상태다.
조 전 부사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기내난동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조 전 부사장은 이번 사건으로 대한항공에 유무형의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그는 대한항공이 한 해 평균 광고비로만 500억 원 정도를 쏟아 부으며 쌓아온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재계 관계자들은 조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가 당분한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구도에서도 한 발 비껴난 것으로 해석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태가 워낙 심각해 조 전 부사장이 경영복귀가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고 승계구도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경영복귀를 하거나 후계구도에 자리를 차지할 경우 한진그룹 자체가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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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대한항공 경영전략·영업부문 총괄 부사장 |
◆ 장남 조원태의 입지 과연 넓어질까
한진그룹 안팎에서 이번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으로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의 입지가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양호 회장은 1949년생으로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67세다. 조 전 부사장과 한 살 아래인 조원태 부사장은 40대다. 최연소 임원 기록을 세운 조현민 전무는 1983년생으로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하다.
조 회장은 그동안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세 자녀에게 회사의 각 분야를 나눠 경영을 맡겼다.
장녀인 조 전 부사장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한 뒤 객실과 호텔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왔다.
장남 조원태 부사장은 대한항공 경영전략·영업부문 총괄과 한진칼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인하대 경영학과와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막내인 조현민 전무는 광고 등 통합커뮤니케이션실과 저비용항공 자회사인 진에어 마케팅 본부장을 맡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입지가 크게 약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조원태 부사장의 독주체제가 앞당겨질 수 있다.
조원태 부사장은 지분 구조나 그룹 안팎에서 보인 행보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었다. 그는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대표를 맡고 있고 대한항공에서도 핵심분야인 경영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의 지분에서도 조원태 부사장이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을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3남매는 지난해 대한항공 주식 773억 원 어치를 조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았다. 각자의 지분율은 1.08%로 같다. 그러나 주식 수는 조원태 부사장이 조현아 부사장보다 700주 정도 더 보유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도 지분율은 2.5%로 같지만 주식 수에서 조원태 부사장이 조현아 전 부사장보다 400주 정도 더 많다.
조원태 부사장이 올해 들어 아버지 조 회장을 따라 회사 안팎의 행사에 얼굴을 적극적으로 내비치고 있어 한진그룹의 후계자로 입지를 다진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이번 사건으로 그 위상이 더욱 공고해졌다.
◆ 조양호는 어떤 승계구도의 밑그림을 그렸나
대한항공의 지배구조를 보면 최대주주는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32.24%)이다. 이밖에도 조양호 회장(0.04%)과 한진(9.69%), 정석인하학원(3.93%) 등이 대한항공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이 15.4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과 장남 조원태 경영전략·영업부문 총괄 부사장이 2.48%, 차녀 조현민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가 2.47%를 소유하고 있다. 3남매 지분율을 합하면 7%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진그룹은 그동안 지주사격인 한진칼을 중심으로 지배구조 재편작업을 해왔다. 한진그룹 경영승계는 조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5% 가량이 누구에게 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조중훈 창업주는 4남1녀 가운데 장남인 조양호 회장에게 그룹의 주력 사업이었던 대한항공 등 항공 운수업을 넘기며 장자승계 원칙을 세웠다.
조선업은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해운업은 삼남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금융업은 막내 조정호 메리츠 금융지주 회장이 물려받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조원태 부사장이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증여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 부사장이 올해 들어 아버지 조 회장과 함께 한진칼 대표이사로 선임된 점도 이런 관측에 설득력을 더했다.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은 칼 호텔 네트워크 등 호텔 및 관광사업을, 차녀 조현민 전무는 저비용 항공사 진에어를 물려받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이렇게 되면 한진그룹이 지분 승계를 마친 뒤 계열분리 수순을 밟을 것이란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상호 의존도가 높은 항공과 호텔산업의 특성상 시너지를 고려해 공동경영체제로 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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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
◆ 조원태와 조현민의 경영승계로 불똥 튀어
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이 터지고 파문이 확산되면서 조양호 회장이 애초 구상했던 한진그룹의 3세 승계 구도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 회장은 이번 조 전 부사장 사건으로 한진그룹의 족벌경영과 세습경영이 크게 부각돼 후계구도와 관련해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건이 터져나오자 불똥이 조원태 부사장이나 조현민 전무에게 튈 것을 가장 우려했다. 후계구도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원태 부사장의 과거 행적과 관련한 자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조원태 부사장은 2005년 승용차 운전 중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70대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려 입건된 적이 있고 2012년 한진그룹의 인하대 운영비리를 비판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폭언을 퍼부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조 회장의 자녀들이 입사 뒤 초고속 승진을 한 점도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대한항공에 입사한지 7년 만에 임원에 올랐다. 조원태 부사장은 2003년 입사 후 4년, 조현민 전무는 3년 만에 임원이 됐다.
대한항공 조종사들 사이에서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족벌경영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거나 “3세들을 보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 교수는 “총수 일가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승계받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이제 해외의 기업처럼 대주주 자녀들이 소유권을 물려받는 대신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수십년 동안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인물들만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