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은행장이 지주회사 전환의 시기를 조절하면서 올해는 내실 다지기에 충실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채용비리, 뇌물사건,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 사태 등 대내외적 악재로 연내 지주회사 전환이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대외적으로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연내 전환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애초 우리은행은 올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3월 안에는 본격적 논의와 이사회 의결을 거칠 것으로 예상됐다. 3월 안에 의결이 돼야 자회사의 배당금에 붙는 과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3월이 됐는데도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구체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2일 이사회에도 지주회사 전환에 관련된 안건은 상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계획했던 대로 올해 안에 지주회사 전환을 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2019년에 추진하면 된다”고 말했다.
손 행장이 1월에 적극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의 뜻을 비쳤을 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는 1월 사내방송을 통한 신년사에서 “올해는 우리은행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에 적절한 시기”라고 말했다.
손 행장은 2017년 말에 취임한 뒤 경영목표로 ‘1등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을 제시하며 채용비리 의혹과 이광구 전 행장의 사퇴로 중단됐던 지주회사 전환을 다시 추진할 뜻을 앞세웠다.
현재로서는 손 행장이 우리은행의 지주회사 전환 시기를 2019년으로 미루고 악재가 될 변수들이 해소될 때까지 토대 다지기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는다. 하고 싶어도 시기가 안좋다는 것이다.
손 행장은 2017년 12월 채용비리에 연루된 현직 임직원 4명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지만 관련자들의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등 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못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18.4%를 매각하는 시기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점도 지주회사 전환 시기를 늦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주회사 전환은 곧 민영화의 마지막 단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 지분 7~8%를 지주회사 전환 전에 먼저 팔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예금보험공사는 우리은행의 지분 매각과 관련해 구체적 방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주가도 5일 종가 기준 1만5650원으로 최근 5년 동안 가장 높았던 2017년 7월 1만9천 원대에서 17%나 떨어졌다.
예금보험공사의 지분 매각을 결정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박경서 민간위원장이 성추행 징계 논란에 휩싸여 사퇴하면서 컨트롤타워 자리도 비게 됐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 쪽에 20억 원에 이르는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점도 손 행장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여건은 불리해졌지만 우리은행은 지주회사로 나아가기 위한 내실 다지기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중소기업대출에 주력하고 해외에서는 지점 확대를 위한 몸집불리기에 나섰다.
특히 해외사업은 2018년 상반기 안에 지점을 200개 더 늘려 모두 500개 해외지점을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우리은행 실적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리은행은 2017년에 순이익 1조5300억 원을 올렸다. 2016년보다 19.8% 증가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를 넘어섰다.
우리은행 노조도 ‘근로자 추천 이사제’의 도입을 지주회사 전환 이후에 추진하기로 합의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회사 전환 시기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그 전까지 본업을 충실하게 수행해서 지속적으로 순이익을 늘리는 등 지주회사 전환의 바탕을 다지고 있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