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이 품었던 ‘토종 명품 브랜드 육성’의 꿈을 잠시 쉬어가려고 한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토종 명품 브랜드를 하나 둘 정리하고 수익성이 높은 중저가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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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 |
12일 삼성에버랜드에 따르면 이서현 사장이 ‘헥사바이구호’를 곧 접을 것으로 보인다. 헥사바이구호는 제일모직이 세계적 명품 브랜드 육성을 목표로 2010년 처음 선보인 여성복이다. 헥사바이구호의 정리는 이 사장이 추구하던 자체 명품 브랜드 육성의 꿈이 방향을 틀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8월에는 자체 브랜드 ‘데레쿠니’도 정리했다. 데레쿠니는 2003년 국내 패션 업계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세계적 명품 브랜드 육성을 위해 만든 토종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출시 3년 만에 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급부상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제품판매가 잠정 중단됐다. 이후 2011년 40~50대 여성을 대상으로 다시 출시했으나 결국 수익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리됐다.
이 사장은 제일모직 시절부터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직접 육성하겠다며 명품 라인 강화에 힘써왔다. 발망과 토리버치를 비롯해 릭오웬스, 발렉스트라 등을 국내로 들여온 것도 이 사장이다. 이 사장은 서울예술고와 뉴욕의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며 패션의 길을 걸어왔는데, 명품을 보는 눈과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어왔다.
최근 들어 이 사장의 명품 고집이 한 풀 꺾인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명품의 판매량이 예전 같지 않은 반면 중저가 브랜드의 수익성은 크게 높아졌다. 특히 2012년 초 직접 준비해 출시한 ‘에잇세컨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 사장도 갈 길이 먼 명품 브랜드 육성보다 당장 수익성이 좋은 중저가 브랜드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에잇세컨즈는 지난 3월1일 서울 강남 코엑스몰 1층에 ‘자라’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꿰차고 들어섰다. 개점 첫 날 방문객 수 8천여 명, 매출 1억 원을 훌쩍 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사장이 3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내놓은 에잇세컨즈는 지난해 매출 1300억 원을 올리며 출시 2년 만에 연간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도 중저가 브랜드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자체 명품 브랜드 육성은 이미 몇 번의 실패로 다시 추진할 동력을 잃었고 수익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에잇세컨즈는 내년 중국 진출을 결정했다. 에잇세컨즈 관계자는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동남아와 일본, 북미 등 해외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해 2020년까지 매출 10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