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한국GM의 경영 정상화를 놓고 벌이는 GM과 협상과정에서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한국GM 실사를 진행하면서 '독자생존' 및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조조정 기본원칙을 틀로 잡고 구체적으로 GM에 감자와 만기연장 등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독자생존’ 구조조정 원칙 vs GM, 한국정부 선(先) 자금 지원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회장이 내세운 '기업의 독자적 생존 가능성 및 장기적 일자리 유지’라는 구조조정 원칙과 '대규모 일자리 상실'을 볼모로 선제적 자금지원을 요구하는 GM의 요구가 맞부딪히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취임 간담회에서 구조조정 원칙으로 “지원 없이도 독자생존이 가능한지 최우선적으로 봐야한다”며 “그 뒤에 지원이나 매각 등을 통해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구조조정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당장 1, 2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일자리창출이 필요하다”며 “필요한 기업에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의미있는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GM은 명확한 한국GM의 경영 정상화 방안과 중장기적 운영계획 등을 내놓지 않은 채 정부의 자금 지원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
GM이 한국GM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보단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을 압박하고 GM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말도 나온다.
GM은 23일 이사회를 열어 2월 말에 만기가 끝나는 7천억 원 규모의 채권회수를 미루기로 했지만 그 시기를 산업은행의 한국GM 실사가 끝날 때로 정했다.
산업은행이 GM에 채권 만기연장과 관련해 확약해달라고 요구했지만 GM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4월 초에 돌아오는 9880억 원 규모의 채권 만기를 놓고도 별다른 논의를 하지 않았다.
GM이 한국GM 실사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곧바로 한국GM에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GM은 또 한국GM에 빌려준 27억 달러 규모의 대출금을 출자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오히려 산업은행의 지분을 낮춰 GM의 운신 폭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한국GM의 정관에 따르면 유형자산 담보설정 등 주총 특별결의 사항은 보통주 85% 이상 찬성으로 가결된다. 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 17.02%를 보유하고 있어 간신히 특별결의를 저지할 수준을 채우고 있다.
GM이 27억 달러 규모의 대출금을 출자전환한다면 다른 조건 변화없는 단순 계산으로는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GM 지분이 1%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게 된다.
◆GM에게 차등감자와 만기연장 이끌어낼 수 있나
GM은 호주에서도 인력감축을 하면서 호주정부를 압박해 지원금을 받아낸 뒤 지원금이 끊기자 곧바로 철수를 결정한 전례가 있다.
산업은행이 한국GM에 자금지원을 결정하더라도 GM이 내세우고 있는 ‘일자리 30만 명’이 중장기적으로 유지될지 불확실한 이유다.
호주GM은 2011년과 2013년에 각각 700명, 500명 규모의 인력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호주 정부를 압박해 지원금을 받아낸 뒤 2013년 호주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지원이 끊기자 같은 해 말에 호주에서 바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전례 때문에 이 회장은 한국GM의 독자생존과 일자리라는 구조조정 기본 원칙을 계속 강조하고 GM을 이 테두리 안으로 끌어 앉힐 방안을 고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GM에 차등감자를 요구해 산업은행의 지분율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이 GM의 요구처럼 한국GM 증자에 참여하지 않고도 산업은행의 영향력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이다.
산업은행은 STX조선해양과 금호산업 등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도 대주주 지분은 100대 1, 소수주주 지분은 4대1 등으로 차등감자를 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차입금의 출자전환이 이뤄지면서 산업은행이 최소한 한국GM 지분 15%를 확보하려면 GM 지분이 20대 1로 차등감자돼야 한다. 산업은행도 일부 비율로 감자에 참여할 가능성을 감안하면 GM에게는 더 큰 비율의 차등감자를 요구할 수도 있다.
차입금 만기연장도 분명히 정해야 한다. GM이 실사 때까지 단순히 회수를 미뤄 놓기만 한 7천억 원 규모의 채권과 4월에 만기가 끝나는 채권 등을 언제까지 연장할 지 확정받기 위해 힘쓸 것으로 보인다.
GM이 ‘대규모 일자리 상실’이라는 우려를 앞세워 지속적으로 국회에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가 끌려다니지 않고 협상 속도를 조절하면서 이 회장의 ‘구조조정 원칙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도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4일 ‘군산지역 지원대책 간담회’에서 “정부가 GM과 대화하고 있는데 GM이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GM과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관계부처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