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한 승계프로그램을 정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명시된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대상을 ‘그룹 경영진’이나 ‘미래인재 후보군’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왼쪽)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KB금융은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내용도 그룹 경영진의 계열사 간 이동, 계열사 내부의 직무 전환, 그룹경영관리위원회 활동, 이사회 보고 참여, 연수 등으로 추상적이다.
KB금융 이사회가 2016년 7월에야 경영승계규정을 제정한 점을 감안하면 그룹 경영진이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제대로 참여한 시간도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은 올해 눈에 띄는 경쟁자 없이 사실상 단독후보로 추천돼 연임했고 취임하자마자 지주사 사장도 폐지했다.
이 때문에 윤 회장은 연임 이후에도 노동조합 등에서 지나치게 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비교적 취약한 경영승계 프로그램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윤 회장이 최종후보군에 들어갔을 때 경영승계 프로그램 대상인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과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도 포함됐지만 이들은 인터뷰 면접을 곧바로 고사했다.
하나금융은 2012년부터 계열사 사장 등을 포함한 회장후보군을 관리해 왔다. 경영승계규정에 명시된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이름과 방식도 상대적으로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김정태 회장은 2015년 3월 별다른 경쟁없이 연임에 성공했다. 계열사 사장 2명이 최종후보군에 함께 들어갔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김 회장이 2015년 초 하나금융 임원들 앞에서 “나도 후계를 생각할 때가 됐지만 후계가 안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김 회장은 2018년 3월 두 번째 임기가 끝나는데 첫 연임 때처럼 다른 후보자의 하마평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직 회장의 프리미엄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경영승계 프로그램이 실제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과 하나금융은 만 70세만 넘지 않으면 연임제한은 없다”며 “윤 회장과 김 회장이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경영승계 프로그램이 유의미하게 운영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최근 금융지주회사 CEO의 승계과정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실효성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최 위원장은 “은행권은 특정 대주주가 없어 CEO가 자신의 연임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 있는 점과 유력한 승계경쟁 후보가 없는 상황도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사가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대상과 내용을 제대로 다듬을 경우 회장후보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경쟁을 어느 정도 촉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신한금융은 지배구조내부규범에 주요 자회사 CEO를 경영승계 육성후보군으로 선정해 회장후보로 양성한다고 명시하면서 경쟁구도를 비교적 선명하게 만들었다.
신한은행 신한카드 신한금융투자 신한생명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이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포함된 주요 자회사로 꼽힌다.
신한금융 이사회도 회의를 수시로 열어 주요 자회사 CEO들을 대상으로 경영성과, 자기계발, 내부평판 등을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조용병 회장이
위성호 행장과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회장으로 선임됐다.
조 회장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과 신한은행장,
위성호 행장은 신한카드 사장으로서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회장후보로 성장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한금융은 라응찬 전 회장의 장기집권과 ‘신한사태’를 교훈 삼아 2011년부터 CEO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승계 노하우를 쌓았다”며 “주요 자회사 사장들을 놓고 ‘컷오프’를 미리 하면서 회장후보 경쟁에 불을 붙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