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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대한항공이 국가인원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받고도 승무원 채용 때 ‘신장 162cm 이상’이라는 기준을 계속 고집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같은 권고를 받고 이런 기준을 없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대한항공의 자회사 진에어는 승무원 채용 때 키를 162cm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키 기준과 관련해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며 채용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 받았다. 하지만 그뒤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도 승무원 채용 때 남녀 승무원의 지원자격으로 ‘신장 162cm 이상’을 명시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승객의 짐과 서비스용품, 구급장비, 비상탈출장비 등을 보관하는 기내 적재함을 여닫거나 비상용품을 꺼내고 적재함 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내 적재함의 높이는 대개 200㎝가 넘고 대형기종의 경우 최고 214㎝에 이른다.
대한항공은 1990년부터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승무원 지망생들 사이에서 대한항공의 규정이 다른 국내항공사는 물론이고 외국항공사보다도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양인의 체격이 더 작은데도 서양의 항공사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항공과 일본항공은 지원자격이 키 158㎝ 이상이며 독일의 루프트한자항공과 핀란드의 핀에어는 키 160㎝ 이상을 지원자격으로 명시하고 있다. 미국의 유나이티드항공은 신장 기준이 5피트(152.4㎝)다.
그 밖에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중동 항공사와 홍콩의 캐세이퍼시픽항공 등은 키 대신 ‘암리치’(arm reach) 기준을 두고 있다. 암리치는 맨발로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어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한다.
에미레이트항공과 카타르항공은 최소 암리치가 212㎝이며 에티하드항공은 210㎝, 캐세이퍼시픽은 208㎝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암리치가 206~208cm가 나오려면 157cm 신장이면 충분하다. 미국 델타항공이나 에어캐나다는 키나 팔 길이 기준이 아예 없다. KLM네덜란드항공 역시 자격요건에 키와 관련한 기준이 없다. 대신 ‘너무 작거나 크지 않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국내항공사 7곳 가운데 키와 관련한 기준이 없는 곳은 아시아나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에어부산뿐이다. 이 두 회사는 채용 자격요건에 ‘기내 안전 및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신체조건을 갖춘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대한항공과 함께 인권위로부터 채용제도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받은 후 키와 관련한 기준을 없앴다.
인권위원회는 승무원 지망생들의 진정을 접수한 뒤 조사를 거쳐 2008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 키 제한에 대해 “신장 162cm 이상이라는 기준은 항공기 객실승무원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이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냈다.
인권위원회는 “향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업무분석에 기초해 객실승무원의 업무상 불가피한 신체적 조건을 다시 설정하고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의 채용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당시 결정문에서 대형항공기를 다수 보유한 외국항공사와 비교하면서 “외국항공사들과 승무원 신장조건이 2cm에서 4.5cm까지 차이가 나므로 신장 162cm 조건이 업무수행을 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