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을 방해하던 웨스턴디지털이 인수전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도시바에 별도로 자금을 지원하는 새 협상안을 꺼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인수의 유력후보로 다시 떠올라 인수전에서 최대한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일 수 있다.
▲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니혼게이자이는 6일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의 경영권에 간섭을 최소화하는 새 합의안을 꺼내들었다”며 “계속 미뤄져왔던 반도체사업 매각절차가 다시 본격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웨스턴디지털은 일본 정부펀드, 미국 사모펀드와 도시바 반도체 인수를 위해 구성한 컨소시엄에서 완전히 탈퇴하고 도시바에 따로 자금을 지원하는 새 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사업 지분을 인수하는 대신 기존에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이 6:4 비율로 차지했던 일본 합작공장의 낸드플래시 생산물량을 5:5로 조정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의 새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다른 인수후보자들과 원활한 협상에 나설 수 있다. 웨스턴디지털이 이전처럼 매각을 방해하기 위해 법적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웨스턴디지털이 빠져나갈 경우 컨소시엄은 약 20조 원에 이르는 인수금액을 모두 떠안게 돼 막대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SK하이닉스와 애플, 사모펀드와 일본 정부펀드가 최근 구성한 새 ‘한미일연합’이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유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시바는 모든 인수후보자와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밝혔지만 대만 홍하이그룹은 일본정부의 반대로 사실상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웨스턴디지털도 손을 뗄 경우 SK하이닉스 컨소시엄만 남는다.
인수전이 이대로 진행될 경우 대부분의 업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윈-윈’효과를 낼 수 있다. 자금마련이 시급한 도시바도 새로운 수를 찾기보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특히 SK하이닉스가 가장 큰 수혜자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와 낸드플래시 기술협력 또는 고객사 공유 등을 노려 인수에 참여했지만 웨스턴디지털의 거센 반대에 번번이 부딪혔는데 이제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진 셈이다.
애플은 도시바에 대규모 자금출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부품사업을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안정적인 낸드플래시 물량확보를 노려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 참여를 계기로 고객사인 애플과 협력관계를 강화해 반도체 공급을 확대할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 인수를 주도하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도시바 경영진과 협상을 위해 다시 일본 출장길에 오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수전의 판도 변화에 대응해 꾸준히 기회를 찾고 있다.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서 여러 유력후보가 떠올랐다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이 반복됐다. 이번에는 판도가 완전히 새로 짜여질 가능성이 열리며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현재 유력한 흐름대로 인수 참여에 성공해도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 스티브 밀리건 웨스턴디지털 CEO(왼쪽)와 츠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3위 웨스턴디지털이 생산능력을 키우면 단숨에 2위로 올라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도시바도 자금지원에 힘입어 다시 생산투자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일본정부의 견제로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을 공유하는 등의 직접적인 협력을 추진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인수전 참여가 경쟁업체들의 배를 불리는 꼴이 될 수 있다.
물론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전체 시장판도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도시바가 자금확보에 고전하게 돼 사업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시장상황에 따라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인수전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를 눈앞에 두게 된 셈이다.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사업의 인수 참여를 놓고 증권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계속 엇갈리고 있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실패한다면 아쉬운 일이겠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그동안 인수시도에 계속해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