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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정말 제조계열사는 포기하고 금융계열사만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동부제철 경영권을 상실하게 되자 경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동부제철은 김 회장이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기업이다.
김 회장의 수족과 같은 동부그룹의 제조계열사들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김 회장의 반도체에 대한 오랜 꿈이 담긴 동부하이텍은 매각 일보직전에 있다. 동부그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동부건설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회장이 동부제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자 김 회장이 동부그룹을 동부화재 중심의 금융그룹으로 재편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이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이 그동안 채권단의 요구에 맞서 동부그룹의 금융계열사 지주사격인 동부화재의 지분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사실이 이런 의심을 더욱 부채질한다.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들은 동부그룹 전체 매출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 구조조정 중 금융계열사 지배구조 구축
김 회장은 동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던 지난 8월 말 제조부문과 금융부문 간 지배구조를 분리했다. 제조업을 포기하더라도 금융계열사를 잃지 않을 수단을 마련한 셈이다.
동부화재는 8월18일 동부제철이 보유하고 있던 동부캐피탈 지분 30%를 55억 원에 매입했다. 이를 통해 동부화재는 동부캐피탈 지분 39.98%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본래 최대주주였던 동부제철의 지분은 20%로 떨어졌다.
이번 거래를 통해 김 회장은 동부그룹 금융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동부화재를 금융부문 지배구조의 정점에 세웠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동부화재는 동부생명과 동부증권의 지분을 각각 92.94%와 19.92%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동부증권이 동부자산운용 지분 55.33%와 동부저축은행 지분 49.98%를 소유하고 있다. 또 동부저축은행도 동부캐피탈 지분 9.98%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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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 |
김 회장은 동부화재를 통해 동부그룹의 금융계열사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했다.
김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은 지난 2일 기준으로 모두 31.33%에 이른다. 김 회장이 지분 7.87%를 보유하고 있으며 외아들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 등 자녀와 김 회장이 100% 출자한 동부인베스트먼트 등이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금융계열사는 온전히 보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동부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와도 동부화재를 비롯한 다른 계열사를 지킬 방어막을 쳐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 김준기, 금융계열사 경영권 아들에게 승계
김 회장의 금융계열사 지배구조 굳히기는 동부그룹의 2세 경영과도 관련이 있다.
동부화재 최대주주는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이다. 동부화재 지분 15.19%를 보유하고 있다. 장녀인 김주원씨도 지분 4.09%를 소유하고 있다. 산업은행에 담보로 잡힌 김 회장의 지분 7.87%를 모두 잃어도 경영권 승계에 큰 지장이 없다.
동부그룹의 금융계열사의 경우 사실상 외아들 김남호 부장이 대주주이자 오너나 마찬가지다. 이미 승계작업을 끝냈다.
김 회장은 동부화재 지분을 놓고 동부그룹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올해 초 동부제철에 1260억 원을 지원하며 김 부장이 소유하고 있는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요구했다. 김 부장의 지분도 담보로 잡혀있지만 동부화재 주가가 뛰면서 추가적으로 담보여력이 생겼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지난 6월24일 채권단과 만난 자리에서 “김 부장의 지분은 포기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의 지분을 추가담보로 제공했다가 잘못될 경우 금융계열사 지배력까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 것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부장은 동부제철 경영진이 아니어서 지분을 내놓을 책임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며 “사모펀드나 외국계 회사가 김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을 가져간다면 동부그룹 금융계열사 전반을 장악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지난 7월 동부제철 자율협약을 맺으면서 다시 김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을 요구했다. 김 회장은 이번에도 이런 요구를 거절했다. 채권단은 결국 김 회장 등 동부제철 대주주의 100대1 차등감자를 포함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동부제철 경영권을 빼앗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김 회장이 결국 동부제철을 포기하고 금융계열사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부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동부제철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는 것은 금융계열사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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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 김준기가 동부그룹 금융계열사는 지키려는 이유
동부그룹 금융계열사는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동부그룹의 전체 매출 가운데 금융부문의 비중은 60%에 이른다. 철강부문이 빠져나가면서 올해는 70%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부문의 대표기업인 동부화재는 총자산 32조 원으로 동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손해보험업계 시장점유율 16%로 삼성화재 및 현대해상보험과 함께 3대 기업으로 꼽힌다.
동부화재은 올해 상반기에 영업수익 6조1544억 원을 올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3093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9.9% 늘어났다. 다이렉트자동차보험 시장에서 삼성화재와 1위 다툼을 벌이는 등 탄탄한 영업력을 자랑한다.
동부생명의 경우 상반기 영업수익은 9141억 원이며 영업이익은 354억 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수익 9220억 원과 영업이익 390억 원에서 실적이 약간 하락했지만 지급여력비율(RBC)이 216%로 안정적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줄 수 있는지 나타내는 재무건전성지표다.
동부증권은 올해 상반기 영업수익 5785억 원에 영업이익 149억 원을 냈다. 영업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6255억 원보다 줄어들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 영업손실 25억 원을 냈던 데에서 벗어나 흑자로 전환했다.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지표도 343%에 이른다.
동부증권 자회사인 동부자산운용도 지난해 동부증권이 순손실 55억 원을 냈을 때에도 순이익 21억 원을 올리며 비교적 좋은 실적을 유지했다.
동부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영업수익 604억 원에 영업손실 561억 원을 냈다. 다만 적자폭은 지난해 같은 기간 964억 원보다 약 58% 줄었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동부화재를 비롯한 금융계열사는 재무안정성이 높다”며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재무적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