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의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비리사태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주인없는 회사나 다름없어 대표이사의 전횡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항공우주산업, 감시시스템 없어 비리 발생했나
21일 업계에 따르면 하 전 사장의 경영비리 의혹을 주인없는 회사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다.
|
|
|
▲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 |
정부는 2006년 이후 10년 넘게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한국항공우주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최대주주인 정책금융기관이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사업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비리는 없는지 등 경영전반을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책금융기관의 특성상 제조기업의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기 힘들어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사실상 주인없는 회사로 운영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하성용 전 사장이 그동안 한국항공우주산업 내·외부의 감시시스템에서 자유롭게 회사를 경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비리 사례를 살펴볼 때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도 하 전 사장의 비리의혹이 지배구조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최측근으로 꼽히는 대학 동창이 대표로 있는 한 협력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오랜 기간 특혜를 주면서 뒷돈을 받은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하 전 사장도 대우 인맥들이 대표로 있는 협력기업들에 일감을 몰아주고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검찰로부터 받고 있는데 남 전 사장의 혐의와 내용이 거의 닮아 있다.
◆ 정부의 뜻 반영된 인사라는 점도 견제에서 벗어나
주인없는 회사의 경영비리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또 있다.
정부의 뜻에 따라 대표이사가 선임되는 만큼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대주주의 견제에서 벗어나고 대표의 임기 안에 비리의혹이 불거져도 제대로 된 수사를 실시할 수 없기도 한다.
검찰이 수사하기 시작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비리혐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과거에 감사원으로부터 지적된 내용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감사원은 2015년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수리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원가계산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547억 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밝혔다. 또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외부용역회사를 선정하는 업무를 한 직원이 사업비 수십억 원을 가로챈 혐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하 전 사장의 개인비리 의혹도 제기됐으나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는 빠졌다.
감사원은 이런 감사결과를 토대로 검찰에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사를 의뢰했으나 검찰은 1년 반 넘게 수사를 사실상 진행하지 않았다.
하 전 사장이 2013년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으로 발탁된 인사라는 점에 검찰이 부담을 느껴 수사를 접은 것일 수 있다고 정치권은 바라본다.
이런 지적에 검찰은 “감사원의 보고를 받은 뒤 최근까지 내사를 진행한 것일 뿐 늑장수사를 하거나 수사를 뭉갠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 지배구조개편 위한 민영화는 가능한가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민영화가 꼽힌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을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만든다면 안정적인 경영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의 경영비리 등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한국항공우주산업 민영화를 추진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수출입은행이 최근 산업은행으로부터 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을 현물출자받은 가격은 주당 6만4100원이지만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 주가는 현물출자 당시 가격보다 20% 이상 떨어져 있다.
주가가 일정수준으로 회복된다고 가정해도 문제가 남는다. 과연 한국항공우주산업을 인수할 매수자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재무구조와 사업시너지 등을 고려했을 때 한화테크윈이 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를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방산업계는 바라본다.
하지만 한화테크윈이 최근 일부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조직을 안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만큼 한국항공우주산업 인수에 당장 뛰어들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가격도 한화테크윈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한화테크윈은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지분을 6% 보유하고 있는데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지분 10.21%만 사들이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하면 최소 6500억 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화그룹이 과거 삼성그룹으로부터 방산·화학계열사를 사는데 2조 원에 가까운 돈을 들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충분한 여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