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가운데 '통신요금인가제'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제도는 시장지배자의 독점을 막기 위해 시행됐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이동통신3사의 요금담합을 정부가 방조하는 결과만 낳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SK텔레콤이 시장지배업자 지위를 굳건히 하게 된 만큼 요금인가제를 폐지해 요금인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 SK텔레콤, 요금제 인가신청 단 한건도 반려 안돼
14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병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단말기 거품과 요금 거품, 고가요금제 체계의 3종 세트가 통신요금을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가계통신비를 효과적으로 낮추는 방안으로 단말기 지급제 도입, 요금인가제 폐지, 알뜰폰 서비스 지원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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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도 국감에서 “비싼 통신요금은 사실상 이동통신 3사의 요금담합과 100% 인가를 내준 미래창조과학부 때문”이라며 “이동통신 요금인가제는 독점을 막고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현재는 정부 주도의 독과점을 유지하는 제도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통신요금인가제는 1996년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국내 휴대전화 이용요금은 이 제도를 적용받는 SK텔레콤이 먼저 요금을 인가받고 KT와 LG유플러스가 이를 모방해 유사요금을 출시하는 방식으로 정해져 왔다.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는 2005년 이후 SK텔레콤이 신청한 353건의 요금제 인가신청을 단 한 차례도 반려하지 않고 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 의원은 “차이가 없는 이동통신3사의 요금제와 시장 선도기업의 요금제 인가신청을 모두 수락하는 정부의 행태가 가계 통신비와 서민부담을 가중하는 근본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도 “통신요금 인가제는 23년 전 과도한 통신요금 상승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라며 “그러나 실제로 이통 3사의 요금담합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의원들의 이런 지적에 대해 “통신요금을 지배적 사업자가 정하면 다른 사업자들이 따라하는 현상이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답변했다. 요금인가제도가 요금담합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최원식 새정치연합 의원도 통신요금인가제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최 의원은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이 고착화하는 한 비싼 통신요금을 낮추기 어렵다고 봤다. 최 의원은 5대 3대 2로 고착된 이통3사의 시장점유 구도를 깨려면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와 국회 일부에서 요금 인가제 폐지 움직임이 일고 있는 만큼 시장지배적사업자 관련 입법화는 더욱 필요하다”며 “가계 통신비 인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5:3:2구조 개선을 위한 국정감사와 대안의 입법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시장자율경쟁 유도해야 통신요금 인하 가능
참여연대와 통신소비자협동조합 시민단체들도 제조사의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와 함께 통신사의 통신요금이 인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단통법 폐지를 위한 소비자 1만 명 서명운동에 나선 컨슈머워치는 “단통법으로 자율적 시장거래를 제한하는 것보다 기업들이 더 싼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도록 경쟁구조를 만드는 것이 소비자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이라며 “통신비는 요금인가제를 풀 때 통신사간 경쟁으로 자연스럽게 인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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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
통신요금인가제 폐지 혹은 개선 주장은 단통법 시행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단통법 시행으로 통신비 부담이 완화될 수 있으리라는 정부의 장밋빛 약속에 밀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전병헌 의원은 지난 8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보조금 경쟁이 요금인하 경쟁으로 이어지도록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법안발의 의원들은 다음달 논의를 거쳐 12월경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내년 초 요금인가제 폐지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요금인가제가 폐지될 경우 통신시장을 둘러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학구도에도 변화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요금제인가는 사전규제여서 미래창조과학부 소관이다.
그러나 제도가 폐지되면 사후규제를 담당하는 공정위의 역할이 커진다. 방통위의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