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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낳은 보조금 축소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예전에 보조금을 앞다퉈 지급해 '보조금 대란'이라면 이제 '보조금 축소 대란'이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보조금을 올리라고 압박했지만 이동통신사들은 찔끔 보조금을 올리며 생색만 냈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불만에 기름만 끼얹는 꼴이 됐다.
가계에서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단통법의 취지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소비자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가입비를 조금 줄여준 것밖에 없다.
최 위원장을 비롯해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단통법을 처음 발의했던 새누리당 10명의 의원들은 ‘을사5적’에 빗대 ‘갑오10적’라는 말까지 듣는다.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게 바쁘다.
삼성전자는 당장 단말기 값이 해외에 비해 결코 비싸지 않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이동통신사들은 단말기 제조사들이 단말기 장려금을 낮춰 보조금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동통신사들이 보조금을 앞다퉈 줬던 ‘보조금 대란’ 속에서도 이동통신사 가운데 누구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이제 이동통신사들은 더욱 이익을 늘리게 됐다. 그러다 보니 누구를 위한 단통법인가 하는 의문은 깊어지고 있다.
누가 이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할까?
◆ 이통3사 보조금 찔끔 올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3사는 8일 새로운 보조금 정책을 내놓았다. 지난 1일 단통법 시행 이후 두 번째다. 일부 단말기 보조금을 소폭 올렸다.
이동통신3사들은 이번 공시에서 제조사 주력상품을 중심으로 보조금을 5만 원 안팎으로 올렸다.
SK텔레콤은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노트4’의 보조금을 11만1천 원(완전무한 100요금제 기준)으로 지난1일과 똑같이 유지했다. LG전자의 ‘G3 CAT6’의 경우 13만3000원에서 20만 원으로 올렸다.
KT는 요금제에 따라 보조금에 차등을 뒀다. 갤럭시노트4의 경우 완전무한 97요금제 기준으로 보조금을 최고 12만2천 원으로 올렸다. 지난 1일 공시한 액수보다 4만 원 가까이 늘어났다. G3 CAT6의 경우 13만6천 원에서 18만9천 원으로 올렸다.
완전무한 129요금제를 선택할 경우 갤럭시노트4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16만2천 원으로, G3 CAT6는 25만1천 원으로 보조금을 올렸다. 요금을 많이 내면 보조금을 약간 더 주겠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갤럭시노트4의 보조금을 11만 원으로 다시 공시했다. 기존 8만 원보다 3만 원 올렸다. 나머지 단말기의 보조금은 큰 변동이 없었다.
LG유플러스는 LG전자의 휴대폰 ‘G프로2’의 보조금을 가장 많이 올렸다. 10만 원 요금제 기준으로 22만7천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주에 비해 9만4천 원을 더 준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직접 나서 보조금 인상을 압박한 점을 감안하면 인상폭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최신 단말기들 구매자들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은 여전히 보조금 최대지원금인 30만 원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이마저도 10만 원 상당의 요금제를 선택해야 받을 수 있다.
휴대폰 대리점을 찾은 한 국내 소비자는 “보조금 상한선을 정할 게 아니라 하한선을 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차라리 단통법 시행 이전이 나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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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단통법이 시행된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휴대폰 판매 대리점을 찾아 이동통신 3사 휴대폰 단말기 가격 지원금 안내표를 보고 있다. |
◆ 갤럭시노트4 미국은 32만 원, 한국은 80만 원
보조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일리가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갤럭시노트4를 사려면 2년 약정으로 매달 7만 원이 넘는 요금을 내도 여전히 단말기 값으로 80만 원 안팎을 물어야 한다.
반면 미국에서 2년 약정을 통해 30만 원대에 갤럭시노트4를 구입할 수 있다. 이는 국내보다 50만 원이나 싼 가격이다.
미국 3위 이동통신사 스프린트는 2년 약정을 통해 갤럭시노트4를 299달러(약 32만원)에 공급하고 있다. 버라이즌, AT&T 등 다른 통신사에서도 50달러 정도 더 내면 구입할 수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이런 엄청난 가격 차이를 두고 “일부 국민을 호갱(어수룩한 고객)에서 구하겠다던 단통법이 오히려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들었다”며 크게 반발하게 한다.
◆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책임 떠넘기기
보조금 축소에 대해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이들은 보조금이 축소된 것을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린다. 이동통신사들은 단말기 장려금이 줄어들었다고 말하고 단말기 제조사들은 통신료 지원금을 줄인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지원금을 분리해 알려주는 분리공시제 도입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8일 갤럭시노트4의 국내 출고가가 부가가치세를 포함하지 않은 경우 87만원이고 미국 출고가가 AT&T 기준 약 826달러로 차이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국가별 보조금 차이로 2년 약정 시 할부원금이 국내 부가가치세 제외 79만6000원, 미국 299달러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런 가격 차이가 국내 이동통신사 보조금이 적은 탓이라는 얘기다.
반면 이동통신사들은 단말기 제조사가 제공하는 장려금이 적은 것이 보조금 축소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동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갤럭시노트4에 삼성전자의 장려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이동통신사들이 제조사에게 더 많은 장려금을 얻어내기 위해 일부러 보조금을 낮게 책정하고있다고 의혹도 제기한다.
단말기 제조사의 경우 비싼 가격 때문에 판매량이 줄어들게 되면 결국 단말기 출고가를 낮추거나 장려금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고객의 불만을 이용해 단말기 제조사들의 장려금을 더 끌어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보조금을 둘러싼 제조사와 통신사의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있다”며 “낮은 수준의 보조금으로 가장 아쉬운 쪽은 결국 제조사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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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3월6일 이동통신 3사 최고경영자들과 보조금 과잉경쟁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최 장관, 황창규 KT 회장. |
◆ 그 많던 보조금을 지급해도 이통사들은 흑자였다
단통법이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통법은 이동통신사들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과도한 보조금 경쟁 때문에 가계 통신비가 증가한다고 본 셈이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으로 시장경쟁을 가로막아 오히려 가계 통신비만 늘리고 있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동통신사의 마케팅비에서 상당 부분은 보조금이 차지한다. 이동통신사들은 그동안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고객을 확보했다. 가입자 한 명을 늘리면 보조금을 주더라도 장기간 요금 수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제값 주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단통법 시행으로 번호이동 경쟁이 힘들어지자 이동통신사들이 보조금을 줄이고 있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 ‘집토끼’만 잘 지키면 되는 셈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이통사들이나 제조사들이 가격할인을 많이 해 줬던 것은 다른 회사 고객을 뺏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이제 다른 업체와 동등한 수준만 유지하며 할인폭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동안 이동통신3사들이 보조금으로 지원했던 돈은 고스란히 이동통신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2015년 이동통신3사의 마케팅 비용이 전년보다 5.6% 줄어 영업이익이 2014년에 비해 39.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동통신3사들이 보조금을 대폭 주던 때에도 이동통신3사들은 적자를 내지 않았다.
이동통신3사는 지난해 막대한 이익을 거둬왔다. SK텔레콤은 2013년 2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KT와 LG유플러스의 영업이익도 8740억 원, 5421억 원이었다.
이렇게 적자가 나지 않는데도 마케팅 비용이 과도하다며 보조금을 축소하도록 강제하는 단통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단말기 가격이나 통신요금에 마케팅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며 “요금을 먼저 내리게 한 뒤 단통법을 시행하는 것이 옳은 순서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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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
◆ 최성준과 최양희, 보조금 축소 대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성준 방통위원장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이들은 단통법 시행 이후 뿔난 소비자들의 비난여론에 휩싸여 있다.
최 장관은 그동안 단통법 시행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최 장관은 장관 후보였던 지난 7월 인사청문회에서 “가계 통신비를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 올해 하반기 발효될 단통법 시행을 앞당길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최 위원장이 단통법 시행 첫날부터 보조금이 너무 적다고 이통사들에게 압박을 가한 것도 이런 상황을 풀어나가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최 위원장은 재공시 하루 전인 지난 7일에도 “단통법으로 수익이 늘어나면 이통사들이 요금을 인하하거나 데이터를 더 주는 등 소비자 후생을 늘리는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기본적 출고가격이 해외보다 높고 2년 약정 가입도 많은 편”이라며 “제조사 입장에서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외국과 가격을 비교해 출고가를 낮추는 등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의 한 축은 이동통신사들이 보조금을 찔끔 올리는 데 그쳐 무너지고 말았다.
단통법이 낳은 보조금 축소에 따른 불만이 커질수록 최 장관이나 최 원장은 정치적 부담을 크게 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최 장관이나 최 위원장이 내놓을 수 있는 뾰족 수가 없어 보인다. 박근혜 정부 들어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방송통신위원장이 끊임없이 통신요금과 단말기 인하를 압박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초라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3 출고가는 106만7천 원이었다. 그런데 갤럭시노트4를 출시하면서 출고가를 95만7천 원으로 내렸다. 그것도 배터리를 하나 덜 주는 조건이다.
이동통신사 가입비만 놓고 보면 SK텔레콤은 2만1600원에서 1만800원으로, KT는 1만4400원에서 7200원으로, LG유플러스는 1만8천 원에서 9천 원으로 내리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단통법 시행으로 번호이동이 힘들어지면서 소비자의 실제로 받는 혜택의 의미는 반감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오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