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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존에서 팔리는 커피믹스 |
한 포장 안에 커피, 프림, 설탕이 모두 들어있는 커피믹스는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커피믹스의 맛에 반한 외국인이 많다. 이들은 커피믹스가 스타벅스 커피보다 낫다고 극찬한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편리성과 재료의 배합비율이 환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동서식품은 커피믹스를 정식으로 수출하지 못한다. ‘맥심’ 브랜드를 빌려쓰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식품과 달리 토종브랜드를 자랑하는 남양유업은 자신만만하게 해외진출을 공언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내부사정으로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외국인들이 아마존에서 구입하는 커피믹스
“나는 세계의 다양한 커피를 맛봤지만 이 제품이 최고다. 한국 교환학생 친구가 소개해줬고 나는 곧 반했다.”
커피믹스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에 영어로 쓰여진 상품평가다. 세계 최대 온라인 종합쇼핑몰 아마존에서 이 제품은 한국 인스턴트커피라는 소개와 함께 팔린다. 상품 만족도는 별 5개 만점에 4.5개다.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는 맥심의 커피믹스 제품들은 모두 포장지에 한글이 적힌 국내용 제품이다. 동서식품은 따로 수출용을 만들지 않는다. 개인 혹은 단체사업자가 한국에서 제품을 구해 미국 소비자에게 파는 것이다.
상품평 가운데 “이곳(미국)에서도 팔면 좋겠지만 안 파니까 어쩔 수 없이 아마존을 통해 다소 비싸게 구입한다”고 아쉬워하는 글도 있다.
상품평을 적은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한국 커피믹스를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부터 말한다. 대부분 한국을 여행하다 우연히 알게 됐다거나 한국인 친구가 줬다거나 해서 접하게 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반했다고 입을 모은다.
구매자들은 커피믹스를 맛있게 마시는 팁을 제공하기도 한다. “휘저을 게 없으면 스틱 포장지를 이용해 저어라”든지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토핑으로 얹어 먹으면 끝내준다”든지 하는 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커피믹스는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커피, 프림, 설탕을 일일이 섞을 시간이 없는 ‘빨리빨리’ 문화에 딱 들이맞는 제품이었다. 다른 나라는 커피믹스가 없다. 유리병에 커피분말만 들어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한 미국인은 “미국에서 팔리는 인스턴트 커피는 보통 병이나 캔에 들어있다”며 “커피믹스가 있긴 하지만 한국 커피믹스처럼 개별 포장돼 있지 않고 맛도 별로다”고 말한다.
맥심 커피믹스가 맛있는 것은 고급원료를 쓰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에 따르면 모카골드 커피믹스는 아라비카 원두 함유량이 80%가 넘는다. 외국인들이 “원두커피를 마시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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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커피믹스 종류들 |
◆ 동서식품 그러나 수출 못한다
동서식품이 국내 커피믹스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며 연매출 1조 원을 올리지만 해외진출을 하지 않는 것은 동서식품의 지분 구조와 관련이 깊다. 동서식품은 미국 회사인 크래프트푸즈와 동서가 지분을 절반씩 나눠 소유하고 있다.
‘맥심’이라는 브랜드는 크래프트푸즈의 등록상표다. 동서식품은 로열티를 주고 맥심 브랜드를 사용한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모카골드’ ‘화이트골드’ ‘오리지널’ 등은 모두 맥심 브랜드를 달고 있다. ‘맥스웰하우스’도 크래프트푸즈가 소유하고 있다.
세계 2위 식품기업 크래프트푸즈 역시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어 ‘맥심’ 이라는 브랜드로 세계 곳곳에 팔고 있다. 따라서 크래프트푸즈는 동서식품과 계약을 맺으며 맥심과 맥스웰하우스를 국내에서만 판매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현재 시판되는 커피제품 가운데 동서식품 고유의 브랜드는 스틱 원두커피 ‘카누’밖에 없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커피믹스의 양이 국내 수요에 딱 맞는 정도여서 수출 여력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서식품은 자체 브랜드 ‘프리마’를 수출하고 있다.
동서식품 프리마는 1982년 해외시장에 첫 진출을 시작한 이후 1996년 수출 1천만 달러를 돌파했다. 2012년 5천만 달러를 수출해 한국무역협회로부터 ‘5천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프리마는 지난해 수출 6천만 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대실적을 냈다. 현재 러시아,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27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 커피 팔아 번 돈, 외국배당으로 나간다
동서식품은 배당금의 50%를 외국 주주들에게 보낸다. 이 역시 동서식품 지분 50%를 미국 크래프트푸즈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동서식품은 지난 10년 동안 배당금으로만 4700억 원을 해외로 보냈다. 이에 따라 동서식품은 사실상 외국계기업이라는 말도 듣는 실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맥심 커피믹스는 국내소비자들을 상대로 1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면서 해외실적은 전혀 없는데 배당금의 반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며 “국내에서 돈 벌어서 해외 주주들에게 퍼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당금 외에 상표권 사용에 따른 로열티도 무시할 수 없다. 동서식품은 2009년 한해 동안만 상표권 사용료 명목으로 크래프트푸즈에 413억 원을 지불했다.
◆ 남양유업, 해외진출 시동 걸었지만
동서식품과 달리 남양유업의 커피믹스는 자체 브랜드라는 강점이 있다. 해외진출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말 커피전용 제조공장을 완공하며 해외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나주에 세워진 커피전용공장은 10만 평의 부지에 연면적 8천여 평 규모로 건설됐다. 연간 생산량은 국내 커피 소비량의 50%를 충당할 수 있는 물량이다. 남양유업은 이 공장을 짓는 데 2천억 원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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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웅 전 남양유업 대표이사 |
김웅 남양유업 전 대표는 지난해 말 커피전용공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2016년까지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확보하는 한편 해외시장에서 1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겠다”며 “접근성이 좋은 중국, 러시아, 일본시장을 우선공략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토종브랜드의 자부심도 강조했다. 그는 “다른 회사와 달리 외국에 단 한푼의 로열티도 지급하지 않고 이를 고스란히 첨단 생산설비와 시스템에 투자해 커피품질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면서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아시아 최대 커피 수출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난 현재 남양유업 커피믹스의 해외진출은 진척이 없다. 대신 국내 커피믹스시장에서 지난 3년 동안 평균 20%씩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김웅 전 대표가 ‘부당 밀어내기’를 한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새로 대표이사가 된 이원구 대표는 최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생수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웅 전 대표가 물러나며 커피믹스 해외진출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