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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윤 스쿨푸드 대표 |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형과 신문배달을 하며 살았다. 배가 고파 김밥을 사먹다 우연히 김밥사업에 뛰어들어 1년에 1천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한식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성장했다.
퓨전분식 체인점인 스쿨푸드의 창업자 이상윤(46) SF이노베이션 대표의 얘기다.
이 대표가 이번에 미국 최대 중식 체인점인 판다익스프레스의 국내 운영권을 따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그동안 국내의 숱한 대기업들 제안을 거절하다가 이 대표와 손을 잡았다.
이 대표는 어떻게 판다익스프레스의 콧대를 꺾었을까?
◆ 스쿨푸드, 판다익스프레스와 손을 잡다
미국 중식 체인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판다익스프레스(Panda Express)가 지난 3일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서 문을 열었다. 판다익스프레스의 국내 1호점은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에 있다.
이 음식점의 한국 내 제휴 사업자는 '스쿨푸드'를 운영하고 있는 외식전문회사 SF이노베이션이다.
이상윤 SF이노베이션 대표는 "아시아 최초로 판다익스프레스를 선보이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오랜 준비기간을 거친 만큼 제대로 된 퓨전 중식을 선보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중식 레스토랑이다. 아시아권에 문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판다익스프레스를 유치하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판다익스프레스가 번번이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상윤 대표는 콧대 높은 판다익스프레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린 것일까.
판다익스프레스를 창업한 앤드루 청 회장은 이 대표가 밑바탁부터 시작해 성공을 이룬 창업회사라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줬다. 또 스쿨푸드의 여러 시스템이 판다익스프레스와 비슷한 것도 제휴를 성공시키는 데 일조했다.
스쿨푸드가 간편한 메뉴와 오픈된 주방, 고급 식재료를 쓰고 위생을 중시하는 점이 판다익스프레스와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또 테이크아웃 위주로 운영되는 점도 유사한 점으로 꼽혔다.
판다익스프레스의 국내 진출은 앤드루 청 회장이 스쿨푸드의 회사 소개서를 보고 “대기업보다 당신처럼 성장해 온 회사와 함께하고 싶다”며 동업을 제안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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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닥익스프레스 1호 매장 모습 |
◆ 콧대 높은 판다익스프레스, 밑바닥 창업에 감동
미국 퓨전중식 1위 브랜드인 판다익스프레스는 1983년 앤드류 청 회장이 부인 패기 청과 공동설립한 회사다.
판다익스프레스는 현재 미국 47개 주와 캐나다, 멕시코, 두바이 등에 16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매년 2조 원 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판다익스프레스가 이처럼 성공을 거둔 비결은 웍(Wok)이라 불리는 무쇠팬을 이용해 센불로 신속하게 조리해 맛과 향을 살렸기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웍은 열을 가하면 최대 815℃까지 올라가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하면서도 빠르게 조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스쿨푸드는 판다익스프레스와 제휴를 맺고 국내에서 매장운영권을 따냈다. 수익은 스쿨푸드가 갖는 대신 판다익스프레스에 로열티를 지불하도록 계약을 맺었다.
이 대표가 모든 권리를 갖는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지 않은 것은 사업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장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직접 진출에 부담을 느낀 판다익스프레스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파트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세계시장을 휩쓰는 캐주얼 한식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요리라곤 배워 본 적 없는 비보이 출신 사업가
이 대표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요리라곤 배워 본 적 없는 비보이 출신의 사업가다. 어린 시절 생계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해 학교도 중퇴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형과 단둘이 서울 신사동 근처의 한 신문지국에서 신문을 돌리며 생계를 해결했다. 중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잠시 비보이 생활을 시작했으나 결핵에 걸려 그마저 그만뒀다.
이 대표는 “이태원에서 이주노, 박남정, 현진영 등과 함께 나이트 클럽 비보이 생활도 했고 댄스그룹 데뷔도 했다”고 말했다.
비보이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자 문득 김밥집을 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보따리 장수 할머니가 계란말이김밥과 장아찌를 팔았는데 정말 맛있었다"며 "점심으로 김밥을 사 먹다 이거다 싶었다”고 창업이유를설명했다.
한일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2002년 월세 40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에서 형과 함께 김밥 배달점을 차린 것이 스쿨푸드의 출발점이 됐다.
그의 김밥집 운영도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독창적 아이디어가 반영됐다. 일반 김밥보다 작게 만든 꼬마김밥 같은 메뉴가 그것인데 제법 인기를 끌었다.
가게가 자리 잡게 되자 이름을 스쿨버스로 바꾸고 메뉴를 늘려 1교시, 2교시, 3교시로 나눠 붙였다. 버스회사라는 오해를 자주 받으면서 이름을 지금의 스쿨푸드로 바꿨다.
이 대표의 자유분방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는 메뉴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스쿨푸드의 핵심메뉴인 마리는 꼬마김밥 크기에 오징어먹물, 스팸, 날치알, 볶음김치, 고추와 멸치 등을 넣어 마리마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까르보나라 떡볶이나 장조림버터비빔밥도 기존 분식의 틀을 깬 획기적 아이디어였다.
그는 “어렸을 때 밥을 직접 해먹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원칙을 따르지 않는 성격이라 라면에 치즈도 넣고 여러 가지로 변형했는데 그때 음식에 장난친다고 혼났지만 결국 스쿨푸드의 컨셉트를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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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윤 스쿨푸드 대표 |
◆ 어떻게 연 매출 900억 원을 올리게 됐나
현재 스쿨푸드는 83곳에 지점을 운영하고 매년 900억 원 가량을 벌어들인다.
최근 해외에도 진출했다. 외국에서 먼저 요청이 들어와 미국, 일본,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매장 6곳을 냈다. 그는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 컨셉트도 바꾸고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도 개발했다.
그는 스쿨푸드 메뉴의 컨셉트도 기존의 '프리미엄 분식'에서 한식과 분식을 접목한 '캐주얼 한식'으로 바꿨다.
우리나라의 분식 메뉴에 대한 개념이 외국인들에게 생소하게 인식돼 해외사업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한식을 세계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청와대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에게 고객을 위한 확고한 경영원칙이 있다.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스쿨푸드 직영점에 직원들을 수십명 씩 배치한 까닭이다. 40평 짜리 목동점에 60명이나 되는 점원이 일하고 있다.
그는 “눈앞의 매장을 보고 먹자고 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거기 가서 먹자고 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스쿨푸드는 분식치고는 가격이 높다는 지적도 받는다. 마리는 7천 원, 까르보나라 떡볶이는 1만 원이나 한다. 그는 이런 지적에 대해 "재료의 품질을 위해 10년 동안 가격을 유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판다익스프레스와 스쿨푸드 매장 모두를 늘리기로 했다. 스쿨푸드의 국내 매장을 최대 150개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판다익스프레스의 경우 1호점 오픈에 이어 수원에 2호점을 낸다. 1호점을 운영해 고객의 반응을 1년 정도 본 뒤 후속 매장 오픈에 대해 협의하기로 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