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가 이재용 부회장 조사를 끝으로 삼성그룹 수사를 사실상 마치고 사법처리 수위를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특검은 뇌물죄 적용을 자신하고 있지만 예외없이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는 원칙론과 한국 경제에서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론 사이에서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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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다. <뉴시스> |
13일 특검 등의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은 22시간에 걸친 밤샘조사에서 최씨 일가 지원을 놓고 대가성을 부인하는 입장을 지켰지만 특검은 그동안의 수사를 기초로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그동안의 관계로 볼 때 ‘일심동체’이기 때문에 삼성그룹의 최씨 지원은 사실상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삼성그룹이 박 대통령의 요구를 받고 미르와 K스포츠에 거액을 출연한 것도 대가성이 뚜렷하다고 판단한다.
특검이 사법처리 범위와 수위를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몇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 등 삼성그룹 수뇌부의 구속영장을 모두 청구할 수도 있다.
또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최 부회장이나 장 사장은 불구속기소할 수 있다. 반대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기소하고 최 부회장이나 장 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런 경우의 수를 놓고 특검은 원칙론과 현실론 앞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 특검이 박근혜 게이트를 규명하고 박 대통령의 각종 비리를 수사하는 만큼 그와 관련된 혐의에 연루된 경제인들에게 예외없는 사법처리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 원칙론의 기둥이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의 뿌리가 정경유착인 만큼 정경유착의 또다른 책임을 지고 있는 경제인도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일각에서 2008년 삼성특검 때도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조성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되고 이학수 전 부회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인정해 결과적으로 박근혜 게이트에 삼성그룹이 연루되는 씨앗을 뿌린 만큼 이번에는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재벌이 법망을 자연스럽게 피해갔던 것은 과거의 일이 됐다”며 “재벌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여론이 점점 악화해 이 부회장의 앞날이 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경제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만만찮게 자리잡고 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그룹 수뇌부가 모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 삼성그룹은 경영공백을 맞게 되고 한국경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삼성그룹은 현재 신년 주요 경영계획수립과 인사이동, 조직개편을 지난해부터 모두 미루고 특검수사 대응에 집중하며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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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 부회장. |
올해 대규모 투자와 미국 하만 인수합병 마무리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경영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 그 타격이 한국경제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이 부회장을 불구속기소하고 최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 청구 등으로 삼성그룹 전체 책임을 묻는 선에서 삼성그룹의 경영공백을 어느 정도 막도록 특검이 현실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 부회장도 특검조사에서 최씨 지원의 결정을 도맡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검의 이런 처리를 기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특검이 삼성그룹의 경영공백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사법처리를 해도 박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점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삼성그룹에 이어 SK그룹과 롯데그룹도 같은 위기를 안고 있어 영향이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늦어도 15일까지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수뇌부의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