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4년 만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다시 추진한다.
지금 부과체계는 지역가입자가 소득이 없는데도 주택이나 자동차 등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직장가입자보다 오히려 더 많은 건보료를 내야하는 기형적 구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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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9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주재한 업무보고에서 23일 국회와 공동으로 공청회를 열어 건강보험료 개편안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건보료 개편은 국민에게 영향이 크고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시뮬레이션 과정이 오래 걸렸다”며 “의견수렴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확언할 수 없지만 국회에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개편안이 확정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개편안은 지역가입자 건보료를 매길 때 재산의 반영 비중은 차츰 줄이고 종합소득 비중은 높이는 한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수를 축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저소득층의 건보료 부담을 완화하고 고소득층이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논의는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공식화됐지만 4년 째 진척이 없었다. 고소득층의 눈치를 본 정치적 선택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복지부가 지난해 2월 말부터 여당과 당정협의회를 7차례 진행하면서도 마땅한 소식이 없자 야당은 각자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압박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구분 자체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건보료 부과체계에서 재산 기준을 없애고 소득 중심으로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이번 개편 방향은 이원적 구조를 유지하는 단계적 개편이라는 점에서 야당과 의견을 조율하는 데 상당한 충돌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구분하는 건보료 부과체계의 이원적 구조는 ‘없는 사람이 더 내는 기형적 구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직장가입자는 월급 등 소득을 기반으로 보험료가 정해지지만 지역가입자는 소득이 전혀 없어도 전월세 보증금이나 주택, 자동차 등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성별과 나이까지도 고려대상이다.
이렇다보니 근로소득이 없어지면 오히려 건보료가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일어나게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초 내놓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장에서 퇴직해 지역가입자로 바뀐 12만여 명은 건강보험료 부담금이 평균 5만5천 원에서 9만3천 원으로 70%나 증가했다.
이런 문제점은 2014년 2월 송파 세모녀 사건이 일어나면서 크게 불거졌다. 생활고로 자살한 세모녀는 월세 50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사실상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성인 추정소득과 월세 보증금 등을 이유로 건보료가 매달 5만 원씩 부과됐다.
반면 고소득층이어도 연금소득이나 금융소득, 기타 소득이 각각 4천만 원만 넘지 않으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피부양자 자격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 2015년 6월 기준 피부양자 수는 2064만 명에 이른다. 건강보험 가입자 10명 가운데 4명꼴이다.
보험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 가운데 집을 2채 보유한 피부양자도 2015년 1월 기준 69만 명, 3~4채 보유자가 52만 명, 5채 이상 보유한 사람도 16만 명이나 됐다. 이른바 ‘고소득 무임승차’다.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직 이후 피부양자로 등록한 내 건보료는 0원이고 죽음을 택한 송파 세 모녀의 건보료는 5만 원 이었다”며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