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슈퍼마켓(SSM) 등 대기업 유통망이 지역 소상공인과 제대로 된 합의없이 편법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현행법상 중소기업자단체 등은 ‘사업조정’을 신청해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사업조정 신청철회를 조건으로 뒷돈을 주는 경우가 많아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지역상인들만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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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26일 국회에 따르면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안을 23일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사업조정 대상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사업조정제도는 지역상권에 진출한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중소기업자단체 등이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중기청은 심의를 통해 대기업의 진출을 최장 6년까지 연기하거나 생산품목, 시설 등을 축소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중기청은 대기업에 권고를 이행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이를 정당한 이유없이 따르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권고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대기업이 ‘상생기금’을 명목으로 뒷돈을 주고 합의를 요구해 자율조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일부단체가 대다수 지역상인들의 동의없이 법률에도 없는 상생기금을 받고 사업조정을 철회해 피해가 크다”며 “벌칙 조항을 통해 지역상인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기청에 따르면 8년 동안 이뤄진 사업조정 신청 816건 가운데 76%인 624건이 자율조정으로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권고조치는 단 11건으로 1%에 그쳤다.
특히 기업형슈퍼마켓(SSM) 분야에 사업조정이 집중돼 816건 가운데 75%인 609건이 해당됐다. 신청대상이 된 기업형슈퍼마켓은 홈플러스가 215건으로 가장 많았고 롯데슈퍼 165건, 이마트 101건, GS슈퍼가 86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최근에도 롯데마트가 사업조정 문제로 도마에 올랐다.
소상공인연합회는 8일 ‘롯데마트 은평점 편법개점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은평점이 불법적 방법으로 사업조정을 철회시켰다며 개점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은평점과 서초점 사업조정과 관련해 각각 8억 원씩 모두 16억 원을 서울남북부수퍼마켓협동조합에 주고 사업조정을 벗어났다.
하지만 합의과정에서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설명회 및 공청회, 설문조사 등은 하지 않았다.
이처럼 소수의 대표단체가 합의만 해주면 인근 상인들의 동의가 없어도 대기업 유통망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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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유통상인연합회가 8일 롯데마트 은평점 앞에서 ‘뒷돈거래, 편법개점 롯데마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소상공인연합회> |
사업조정은 중소기업자단체가 할 수 있는데 중소기업자단체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 및 시행령에 따라 주무관청의 설립인가를 받은 협동조합, 협동조합연합회 등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사업조정의 합의 주체를 명실상부한 지역 소상공인들의 대표체로 명확히 해 대형마트의 입점을 실효성있게 차단해야 한다”며 “대형마트 입점이 필요한 경우 지역전체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신중하게 반영해 협의해 나가는 등 상생협력법의 기본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기청 역시 법률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영섭 중기청장은 10월 ‘전국 사업조정 실무자 워크숍’에서 “소상공인 피해여부를 꼼꼼히 살피고 필요한 경우 법 개정을 통해 제한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중기청은 지역상인을 대표하는 단체의 대표성이 부족한 경우 피해중소기업이 직접 신청할 수 있도록 사업조정 신청요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살펴보기로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