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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스틸이미지. |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최고 권력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남모르는 사생활은 일반 국민들의 호기심과 맞물려 헐리우드가 놓치지 않는 대상”이라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뭘 해도 “지금 이럴 때인가” 자조섞인 푸념을 늘어놓는 이들도 많다.
버라이어티가 지적했듯 대통령은 영화제작자들이 사랑해온 소재다. 대체로 헐리우드에서만 그렇다. 한국영화에서 대통령을 실화로든 허구로든 다루는 일은 드물다.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한 탓일 게다.
4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실시간예매율 3위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과 연설 등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10월26일 개봉해 3일 기준 누적관객 3만 명을 돌파했다. 예매율뿐 아니라 좌석점유율도 높아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관객이 몰리자 개봉 당시 30여 개였던 스크린 수도 7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입소문을 타고 예상 밖 흥행이 이어지자 스크린 수를 더 확대하라는 관객들의 요구도 높다.
다큐멘터리에는 두 명의 무현이 등장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백무현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백 후보는 화백으로 더 유명한데 올해 4.13 총선 당시 여수에서 출마했다 낙선했고 8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0년 총선 당시 연설을 비롯해 주변인들의 회고담,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인간적인 모습들이 영상에 담겼다.
난국에 추억팔이 감성을 호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나올 법한데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워낙 큰 탓인지 오히려 호응을 크게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참된 지도자에 대한 갈증이 어느때보다 큰 것이다.
제작사 측은 "많은 국민들이 좌절을 겪고 있는 참담한 시기인 만큼 더욱 많은 관객분들과 가까이에서 소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상업영화로 국내에서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02년 개봉한 안성기씨 주연의 ‘피아노 치는 대통령’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허구의 인물이었다.
실화소재 영화로 2013년 개봉해 1천만 명 이상을 동원한 ‘변호인’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기를 바탕으로 했으나 대통령에 취임하기 이전의 에피소드에 국한됐다.
반면 헐리우드는 대통령이란 소재를 영화속에서 자유롭게 ‘소비’해왔다. 역사적 평가가 이미 끝난 에이브럼 링컨 대통령, 존 F. 케네디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의 전기를 다룬 영화들이 많다.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젊은 시절 링컨’(1936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을 다룬 정치극 ‘대통령의 사람들’(1976년) 등 일대기 형식은 물론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실화에서 중심인물로 다뤄지곤 했다.
해리슨 포드가 대통령으로 등장해 악당들을 멋지게 해치우는 ‘에어포스원’(1997년)은 미국식 영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대통령에 대한 환타지를 극대화한 작품일 것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JFK’(1991년)는 대통령 실화소재 영화 가운데 지금도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에 얽힌 수수께끼를 파헤치며 정의란 무엇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감동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종 영화전문 사이트들이 꼽는 ‘죽기전에 봐야 할 영화’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영화다.
영화 ‘JFK’에는 케빈 코스트너의 입을 빌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만약 정부가 국민을 속인다면 그게 위험한 거요. 그 나라엔 진실도, 미래도 없소. 반드시 정의를 가리겠소.”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