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이 중동전쟁으로 확전되면 '제3차 오일쇼크'가 발생해, 국내 석유화학·에너지·차·전자 기업에 불똥이 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이란이 13일(현지시각) 밤 이스라엘에 보복 공습을 실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에 따라 중동 전체로 전쟁이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동대전 발발 공포에 유가는 물론 원/달러 환율까지 치솟으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과거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때처럼 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 시대'가 다시 도래해 한국 산업계를 덮칠 가능성마저 나온다.
제조업 중심의 국내 기업들은 원유와 원자재를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고유가·고환율이 촉발할 원자재 가격 상승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15일 산업계와 증권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이란 분쟁이 중동 전체로 확전할 경우 이미 배럴당 90달러 수준까지 오른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래피던그룹의 밥 맥널리 대표는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란의 무력 충돌로, 국제 원유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사우디, 이라크, UAE 등 주요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의 핵심 해상 수송로이다. 2022년 기준 글로벌 해상 석유 수송량의 28%를 차지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해 고유가 현상을 심화될 것”이라며 “유가 상승은 일반적으로 물가 상승과 고금리를 야기해 경제 전반에 부담을 가져오며, 간접적으로 달러 강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와 금리, 환율이 동시에 상승하는 ‘3고(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들어 지속적으로 상승해 현재 1380원을 넘어섰으며, 1400원 대까지 바라보고 있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대부분의 국내 기업에 악재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은 높은 유가가 지속될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주요 원재료인 나프타가 원유에서 추출되는데, 기업들은 유가가 상승해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정유 기업은 단기적 관점에서 유가 상승이 기존 원유 재고의 이익으로 반영돼,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원유 매입과 석유제품 출고에는 30~40일의 시차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가 상승 흐름이 장기화하면 오히려 세계 수요가 줄어들면서, 정유기업들 정제마진도 하락하게 된다.
▲ 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 현상'이 다시 한국 경제를 흔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자동차·철강 산업은 중동지역 분쟁으로 다시 공급망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물류 차질 심화에 대비해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선복을 최대한 확보하는 동시에 물류비 부담 경감을 위한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원재료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전기전자, 배터리 업계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동시에 10% 상승하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0.03% 상승)하나, 수입금액은 3.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무역적자 키우고, 기업 수익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도체처럼 전체 비용에서 해외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일부 수출 기업은 환율이 높을 때 실적이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가전, 배터리 등 대부분 산업은 원자재값 상승과 고환율이 절대 경영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이 일시적일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거시적 관점에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며 “최근 리튬 등 원자재 가격의 경우 많이 내려가 있었던 만큼, 추후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유가 여파로 다시 인플레이션(고물가)이 나타나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도 더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반도체, 배터리 산업의 투자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2년에 걸친 금리인상 기조로, 국내 주요 기업들은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대표 반도체기업인 SK하이닉스의 2023년 이자 비용은 1조1510억 원으로, 2022년 3530억 원 대비 226.2%나 증가했다. 배터리 기업인 SK온은 2023년 기준 부채가 21조7842억 원으로 2022년보다 6조 이상 늘어, 재무 위험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 기업들은 더 버티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간담회에서 “유가가 안정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 2.3%까지 갈 것 같으면 금통위원들은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며 “반면 2.3%보다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면 하반기 금리 인하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