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이사가 전고체 2차전지 소재로까지 소재 사업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쟁사와 비교해 석유화학 의존도가 높은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들은 전지 소재를 핵심 미래 사업으로 정해 놓은 만큼, 머티리얼즈의 소재 사업 확장 성공 여부는 그룹 차원에서 체질개선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이사(사진)가 추진하는 소재사업 확장 전략의 성패는 그룹 화학군의 체질개선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김 대표는 전고체 전지 핵심 소재인 고체 전해질 개발과 생산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차세대 전지로 꼽히는 전고체 전지는 현재 가장 보편적 리튬 이온전지에 들어가는 액체 상태 전해질이 아니라 고체 상태 전해질을 사용하는 전지다.
전고체 전지는 고체 전해질을 쓰기 때문에 일반 리튬이온전지와 비교해 구조적으로 더 단단하고 안정적이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부품을 줄이는 대신 전지 용량을 늘릴 수 있는 활물질을 채울 수 있어 에너지 밀도도 더 높다.
회사는 전고체 전지의 핵심 소재인 고체 전해질을 개발하고 있다. 2025년 공급계약을 따낸 뒤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연산 1200톤 규모의 고체 전해질 생산설비를 구축한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이를 위해 전북 익산 2공장에 150억 원을 투자해 고체 전해질 생산을 위한 파일럿 설비를 짓고 있는 중이다. 이 파일럿 설비는 오는 6월 말까지 연산 최대 70톤 체제를 갖춘 뒤 올해 말까지 시험 가동과 안정화 단계를 거쳐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지난 5일 전북 익산 2공장에서 열린 고체 전해질 파일럿 설비 착공식에 참석해 "많은 배터리 기업과 소재 기업들이 고체전해질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추진하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선제적 투자를 통해 우리만의 차별화한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주요 고객사를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체 전해질의 원재료 확보도 추진한다. 회사가 개발·생산을 준비하는 고체 전해질은 황화물계로 황화리튬을 적용해 만든다. 회사는 황화리튬을 만드는 이수스페셜티케미컬로부터 황화리튬을 공급받는 것을 협의하고 있다.
김 대표는 고체 전해질뿐 아니라 리튬인산철(LFP) 양극재와 실리콘 음극재 등 다른 전지 소재 쪽으로도 사업을 본격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중으로 리튬인산철 양극재 파일럿 설비를 구축하고, 시제품 개발과 제품 생산 계획도 세웠다.
리튬인산철 양극재가 탑재되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주력 제품인 삼원계 배터리와 비교해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전기차 시장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저가형 배터리에 탑재되는 리튬인산철 양극재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 더해 성능을 보강해 중국 업체들과 차별점을 만들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실리콘 음극재는 프랑스 스타트업 앤와이어즈(Enwires)와 공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계 음극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소재다. 실리콘 음극재는 단위 무게당 용량이 흑연계 음극재보다 10배 가량 높아 전기차 주행거리를 대폭 늘리고, 충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특히 흑연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실리콘 음극재 상용화는 탈중국 차원에서도 필요한 산업적 과제다. 국내 수입되는 흑연 가운데 중국산 비중은 90%가 넘는다.
회사가 추진하는 전지 소재 사업 다변화는 그룹 차원의 석유화학사업 체질개선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석유화학사업을 보유한 대기업 가운데 가장 변화에 늦은 곳으로 꼽힌다.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적으로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다른 경쟁사가 일찍이 2차전지와 재생에너지 쪽으로 사업 폭을 넓혔지만, 롯데그룹 화학군은 여전히 석유화학사업 비중이 높은 편이다.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 군은 2차전지 소재 가치사슬(밸류체인)에서 알루미늄박(양극집전체), 동박(음극집전체), 분리막 소재, 전해액 유기용매 등 4대 소재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동박 사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성과가 나타났다고 보기 어려운 단계다.
동박 사업조차도 시장 지위가 탄탄하다고 볼 수 없다. 중국에서 비롯된 과잉공급의 영향으로 부진한 실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5일 익산2공장에서 김연섭 대표이사(가운데), 황민재 롯데케미칼 종합기술원장(오른쪽 세번째) 등 주요 참석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황화물계 고체전해질 파일럿 설비 착공식'을 진행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이 때문에 동박 외에 차세대 소재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이 그룹 차원에서도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중요한 과제다.
차세대 소재 분야는 아직 시장이 본격 개화하지 않은 단계인 만큼, 사업화 준비를 서둘러 선점 효과를 볼 여지도 있다. 뒤늦게 전지 소재 분야에 뛰어든 실책을 만회할 기회가 있는 셈이다.
회사는 소재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룹 화학 계열사들과 다방면에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김연섭 대표는 지난해 7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출범 뒤 첫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는 리튬인산철 양극재, 실리콘 복합 음극재, 고체전지 등 차세대 배터리 소재 확장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롯데그룹 화학군과 연구개발 협력, 마케팅 공동 협업을 통해 고객사에 기술 혁신과 토털 소재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