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더인 TSMC 회장이 미국에 3나노 반도체공장 투자계획 철회 가능성을 언급하며 미국 정부 지원을 재차 압박했다. 류더인 TSMC 회장.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하는 반도체공장 가동 시기를 예상보다 더 늦추고 3나노 공정 도입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보조금 지원 대상을 발표하기 시작한 가운데 TSMC가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직접적으로 강한 압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TSMC는 애리조나 제1 반도체공장 가동을 2025년으로 늦춘 데 이어 제2 공장도 예정보다 약 2년 늦은 2027년~2028년에 양산을 시작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전날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알리며 전문인력 확보 문제와 미국 정부의 건설 보조금 협상에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TSMC는 현재 가장 앞선 미세공정 기술인 3나노 반도체를 당초 미국 제2 공장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계획도 재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객사 수요와 미국 정부 인센티브가 투자 계획에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TSMC를 비롯한 해외 반도체기업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최근 활발히 거론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공장 또는 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하는 기업에 520억 달러(약 70조 원)안팎의 보조금과 추가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반도체 지원 법안을 도입했다.
그러나 대상 기업을 결정하기까지 1년 넘는 시간이 걸린 데다 TSMC가 받는 보조금 규모도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지원 대상이 군사용 반도체 관련기업에 한정되어 있고 자연히 해당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 인텔이 막대한 보조금을 선점하기 유리한 상황에 놓인 데 따른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첨단 반도체 대신 구형 반도체를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 산업 경쟁에 구형 반도체가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TSMC가 애리조나 제1 파운드리공장 가동 시점을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늦춘 것도 미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협상 수단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나아가 제2 공장 투자 일정과 3나노 공정 도입 여부를 모두 언급하며 정부 지원에 불확실성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더 강력한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반기던 반도체공장 투자 프로젝트가 재차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며 “TSMC와 미국 정부 사이 협상이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TSMC는 미국 정부가 현지 반도체공장 건설 비용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초과이익 공유에 관련한 내용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 세부조항에 따르면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은 중국에 시설 투자가 제한되고 공장에서 발생하는 이익 일부를 미국에 반환해야 하는 등 제약이 따른다.
▲ 2022년 12월6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열린 TSMC 반도체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 내정자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류더인 TSMC 회장(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바이든 대통령은 TSMC가 애리조나에 제2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에 직접 참석해 환영의 뜻을 전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에 3나노 미세공정 등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들어선다면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위협에 리스크를 덜고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더인 회장 발언으로 TSMC와 미국 정부 사이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정부 차원에서 TSMC와 더 활발하게 협상에 나서야만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인텔과 삼성전자도 미국에 첨단 미세공정을 도입하는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는 만큼 TSMC의 투자 지연과 3나노 공정 도입 철회가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인텔의 파운드리 기술력과 생산 능력은 아직 시장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첨단 파운드리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TSMC를 끌어들이는 일은 필수적이다.
TSMC가 미국 정부와 겪고 있는 갈등 상황은 삼성전자에도 마찬가지로 벌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2조7천억 원)를 들이는 4나노 파운드리 생산설비 가동을 이르면 올해 말부터로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TSMC와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에서 언제, 어느 정도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공장을 일찍 가동하면 상당한 비용 부담을 지게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테일러 파운드리공장 양산 시기도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TSMC의 투자 지연 언급으로 바이든 정부의 미국 반도체 제조업 재건 계획은 큰 타격을 받게 됐다”며 “미국 정부 지원이 불투명해지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