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납품업체에 제품단가를 내리라고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홈플러스 납품업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공정위는 ‘을’들을 돕지 못하는 것일까? 혹은 돕지 않는 것일까?
|
|
|
▲ 노대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
25일 홈플러스 납품업체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해 말 납품업체에 “내년부터 판매마진을 1.5% 올리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는 납품가격을 1.5% 내리라는 뜻이다.
이메일에 또 “장려금 전환 건”이라는 문구도 있는데 이것은 판매장려금을 대신할 수단을 마련하라는 주문이다. 판매장려금은 제품을 많이 팔아달라고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 지급했던 비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판매장려금을 문제삼았고 대형마트 3사는 판매장려금을 없앤다고 공식발표했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판매장려금을 대신할 수단을 마련할 것을 납품업체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납품업체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윈회가 판매장려금 받지 말라니까 그만큼 우리한테 납품단가를 후려쳐서 수익을 그대로 보전받고 있다”며 “대형마트 3사가 모두 똑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납품업체들은 공정거래위에 호소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납품업체의 또다른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있으나 마나”라며 “거기다 공개적으로 알렸다 보안이 안되면 거래가 중지된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을’의 사정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런 공정위의 태도와 관련해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일이 농심의 물량 밀어내기 건이다. 농심은 특약점에 판매장려금을 미끼로 과도한 매출목표를 부과했고 이를 문제 삼는 특약점에 대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농심은 계약서에 ‘갑과 을의 해석에 이견이 있을 경우 갑의 해석을 따른다’는 문구를 넣어 이런 불공정행위를 했다.
그러자 일부 특약점이 2012년 공정거래위에 이런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는 신고를 받고 일년이 지나도록 조사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몇몇 야당 의원들이 농심 본사를 방문하고 나서야 문제가 된 문구가 계약서에서 삭제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신고한 특약점주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았다. 특약점주들이 조사를 받으러 공정위에 갔더니 농심 직원 대여섯 명이 미리 진을 치면서 특약점주들을 압박하는 일도 일어났다.
인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지난해 “한국의 갑을 관계가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원인으로 공정위의 역할부재도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 납품업체들이 공정위에 신고를 하지 않은 것도 공정위에 대한 이런 불신 때문이다. 자칫 거래선마저 끊기는 보복을 당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런 보복에 대한 우려는 앞으로 조금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4월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현황보고에서 공정거래법에 보복금지 조항이 없어 대리점이나 협력업체들이 피해사실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공정거래법에 보복금지 조항을 넣겠다”고 대답했다.
지난 5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불공정행위를 신고한 을에 대해 갑이 거래중지 등 보복행위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가장 높은 수위의 벌칙으로 올해 말부터 시행된다.
보복조치 금지조항은 현재 하도급법 제19조(보복조치의 금지)와 대규모유통업법 제18조(불이익 등 금지)에 이미 도입돼 운영중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에 보복금지 조항이 없어 불공정거래에 대한 신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업자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