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돈은 필요한데 현대증권은 제값받기가 어렵고, 믿었던 현대엘리베이터는 소송 등으로 발목이 잡혀 돈 마련이 쉽지 않다.
|
|
|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그룹과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계열사를 SPC(특수목적회사)로 넘겨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SPC는 현대증권과 금융계열사를 넘겨받은 뒤 일부 자금을 현대그룹에 먼저 수혈해 준다.
매각 대상은 현대증권을 포함해 현대증권이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자산운용과 현대저축은행이다.
다른 자산은 현대그룹 자체에서 개별 매각을 추진하기로 결정됐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12월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계열사를 매각하고, 현대상선 항만터미널 사업, 벌크전용선 부문 일부, 인천 항동 부지 등을 팔아 3조3,000억원의 돈을 마련한다는 자구책을 발표했다.
현대증권이 이런 매각방식을 취한 것은 현대그룹이 그만큼 돈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올해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4,200억원과 기업어음 4,000억원을 막아야 한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증권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7,000억원 이상을 수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그 기대의 절반 수준밖에 받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 관계자는 "실사를 해봐야 현대증권 매각 가격을 산정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현대증권 매각가가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투자금융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증권 인수자로 떠오르는 그룹이 있어 현대증권 매각이 급속히 진행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엘리베이터조차 불안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토종 승강기 업체로 국내 시장 점유율이 45%로 1위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로 지분 30%를 소유하고 있는 쉰들러가 지난 1월 현정은 회장과 한상호 대표 등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며 7,180억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쉰들러 측은 현대그룹의 지배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쉰들러가 적대적 M&A를 목표로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와 쉰들러의 갈등은 이번만이 아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2006년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놓고 현대중공업과 다툼을 벌일 당시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맺은 파생상품 손실이 커지면서 둘 사이는 틀어졌다. 그 이후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를 할 때마다 쉰들러는 2012년 800억, 2013년 970억의 가처분 신청 등의 줄 소송으로 맞서 왔다.
현대그룹의 자구책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증자를 통해 2,000억원 가량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쉰들러와의 소송 등으로 증자 일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더욱이 쉰들러는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난 3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일 주례회의에서 “취약 대기업그룹의 구조조정이 시장안정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핵심현안 중 하나”라며 "각 그룹이 발표한 자체 구조조정 방안들이 계획대로 차질없이 이행되도록 철저히 점검해 시장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만전을 기해달라"고 언급했다. 물론 ‘취약 대기업’에 현대그룹도 포함된다.
현대그룹은 자구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그룹의 규모는 크게 위축되지만 주요 계열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500%에서 200%대로 낮아질 수 있다. 문제는 그 자구책대로 가기가 너무나 험난해 보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