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3-08-22 15: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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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22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변화 시대의 기업의 책임' 토론회 참석자들이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기후실사 문제도 한걸음씩 나아가면 몇 년 뒤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현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후변화시대 기업의 책임 토론회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후실사’ 논의의 의미를 짚으며 말했다.
유럽연합(EU)의 공급망실사법 제정 움직임이 우리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이 먼저 나서서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측정하고 감축계획을 수립하는 ‘기후실사’(Climate due diligence)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국가인권위원회, 녹색전환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기후변화 시대의 기업의 책임, 공급망 실사법의 활용과 확장’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기후변화가 인권문제 차원으로 접근되는 세계적 추세를 강조하며 국내에서도 기업들의 ‘기후실사’ 의무를 부여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발제를 맡은 이상수 서강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스스로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 탄소배출량을 줄이도록 규제하는 ‘기후실사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있고 더 필요하면 국가가 명령을 하라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기후변화로 이득을 누리는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탄소중립기본법에 규정된 ‘녹색경영’은 기업이 직접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책임을 지는 ‘기후실사’ 요소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탄소중립기본법은 녹색경영을 ‘사회적·윤리적’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기업에 직접 책임을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친환경 농장인 ‘어떤 바람 농장’의 김종철 변호사도 기업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전향적 태도로 바뀐 것은 지구에 대한 걱정이나 위기의식이 아니라 소송때문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기업 규제 강화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김 변호사는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이끈 건 기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며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이를 담보할 규범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의회는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 수정안에서 기업이 기후위기에 기여한 정도와 기후위기와 싸우려는 그들의 노력 사이에는 근본적 불일치가 있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현재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과 관련된 비재무적공시가 잘 정착되더라도 그것이 탄소배출 감소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기후실사의무 부여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지 변호사는 “미국과 유럽에서 비재무정보 공시를 자율에서 의무화 공시로 바꿔가는 추세”라며 “하지만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뉴클라이밋 인스티튜트 분석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가장 기후대응을 잘하고 있는 기업들도 직접 배출량 감소보다 간접적으로 탄소배출을 상쇄시키는 활동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시의무보다 본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환경을 고려할 때 ‘기후실사’를 규정한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렵다는 냉정한 분석도 나왔다.
시민활동가인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국장은 “한국에서 기후실사까지 가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EU에서 제정되고 있는 수준의 공급망실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국무회의에서 공표될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기업의 인권문제에 관련해서도 현재 윤석열 정부가 어떤 입장인지도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나 국장은 법무부와 여러 차례 소통한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최근 국제연합(UN)에 제출한 보고서 초안에는 명시적으로 "인권실사법을 도입할 생각이 없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22일 기후변화시대의 기업의 책임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소영 의원실>
김현주 국가인권위원회 주무관은 기후위기를 인권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정부나 기업에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더 쉽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인권보장은 이미 정부의 책임인 만큼 기후위기가 인권적 차원으로 연결될 때 국가는 물론 기업의 책임이 더욱 분명해 진다는 것이다.
김 주무관은 “지구가 끓는 시대가 왔으며 노동자들은 폭염에 쓰러지고 폭우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주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된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접근해야 헌법상 자유권, 생명권, 사회권 등과 직결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을 들은 이소영 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기후위기 관련 활동과 움직임들이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 의원은 “2017년 변호사를 그만두고 기후솔루션이란 단체를 만들어 ‘탈석탄’이라는 주제로 국회를 오갔을 때 ‘탈석탄’이 뭔지를 묻거나 ‘왜 석탄만 안 되냐’ 같은 반박도 받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금융기관에서 석탄발전 부분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론회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기후실사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느낀 만큼 입법적으로 필요한 사항은 검토해서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국회 기후특별위원회 소속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날 부당한 표시·광고행위 규제대상의 범위에 석탄화력발전 등이 포함되도록 하고 화석연료 발전 관련 기업은 녹색기업으로 지정받을 수 없도록 하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