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 소득 감소와 식량 여건 악화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미국 애틀랜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 이상고온으로 노동시간이 줄면서 노동자들이 식량을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소득 감소 때문이었다.
전 지구적 기온상승으로 폭염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돼 보험제도, 노동환경 개선 등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21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기온상승과 노동자들의 식량 여건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에 게재됐다고 보도했다.
논문은 세계 150개국, 54만여 명 대상 설문조사를 종합한 결과 한 해 중 가장 더운 일주일 동안 노동자들의 식량 여건이 악화됐던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 저술자인 캐롤라인 크루거 옥스퍼드 대학 연구원은 국제통계기관 ‘갤럽’이 각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를 참고했다. 갤럽은 각 가구를 대상으로 지난 12개월 동안 급여 관련 문제를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가구 가운데 약 78%가 폭염 중 노동활동 제한으로 급여 감소를 겪었으며 26%가 식량 수급에 문제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크루거 연구원은 블룸버그를 통해 “노동자들이 이상 고온 때문에 노동활동을 하지 못했다”며 “노동 시간이 줄어든 탓에 급여도 줄어 식량 구매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논문에 첨부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폭염으로 인해 감소한 노동시간은 4700억 시간으로 추정됐다. 이를 세계 노동가능인구 수로 나누면 한 사람당 약 1.5주 약 열흘 정도 노동시간이 감소한 셈이라고 논문은 설명했다.
크루거 연구원은 “외부활동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과 농부 등이 많은 국가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며 “기온 상승에 취약한 업종이 많은 나라일수록 경제적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기반시설이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는 농부들이나 냉방설비가 잘 갖춰지지 못한 방직물 공장 노동자들이 식량 조달 문제를 자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급여가 줄어도 식량 수급 문제가 일어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냉장고 즉 장기보관시설을 갖춘 가구, 친구와 가족 등 주변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구는 급여 감소의 영향을 덜 받았다.
크루거 연구원은 대책도 제안했다. 단기 대책으로는 록펠러 재단이 인도에서 시험적으로 운영하는 소액보험(Microinsurance pilot) 소개됐다.
록펠러 재단이 비영리로 운영하는 이 보험은 가입자가 1달러를 보험료로 내면 고온 현상으로 노동을 하지 못하는 날에는 3일 동안 최대 85달러까지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일종의 폭염 실업 보험이다.
다만 이런 보험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로 아직 정부 차원에서 이와 같은 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없다.
오히려 일부 지역정부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온열 질환 대책을 폐지하고 있다.
연례적으로 폭염을 겪는 텍사스주는 원래 외부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에 ‘워터브레이크(물을 마시는 휴식시간)’를 보장하고 있었는데 다음 달부터 이 제도가 폐지된다.
장기적 대책으로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폭염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도시와 건물 등 노동환경을 시원하게 개선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안토넬라 마조네 브리스톨 대학 연구원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크루거 연구원의 논문은 식량 문제와 기온 상승의 연관성을 혁신적이고 방법론적으로 풀어냈다”며 “외부 노동 활동과 식량 문제 사이에 논리적인 일관성이 보였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