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와 올해 삼일절 기념사에서도 연이어 일본과 관계 변화의 필요성과 협력파트너로서 일본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정상회담을 앞둔 만큼 이러한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는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한미일 정상회담 주무부처를 맡고 있는 박진 외교부 장관 또한 10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통화를 했다. 두 장관은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 준비를 비롯한 양국 주요 현안과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박 장관과 블링컨 장관은 한미일 정상회담이 3국 협력의 역사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폴 라캐머라 유엔(UN)군 사령관 등 유엔사령부 주요직위자 간담회 자리에서도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윤 대통령은 “강력한 한미동맹을 핵심 축으로 유엔사 회원국들과 튼튼한 연대를 통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상회담에 앞서 일본 정부와 오염수 방류계획 관련 실무자급 기술협의를 마무리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만큼 양국 정상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일일 브리핑에서 ‘한일 추가 실무자급 기술협의가 다음 주에 열리느냐’는 질문을 받자 “정부 차원에서 당연히 다음 주에는 매듭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일 관계 개선에 어느 정도의 진심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오염수 방류라는 현안을 안고 있는 기시다 총리로서는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시다 총리는 8일 야마다 시게오 외무성 차관급 인사인 외무심의관을 신임 주미 일본대사로 내정하며 미국과 관계 강화에 나섰다. 차관급 인사가 주미 일본대사에 발탁된 것은 12년 만이다.
기시다 총리가 패전일인 15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공물 봉납을 진행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두 번째)가 2013년 12월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내각의 야스쿠니 참배·공물 봉납은 그동안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2차 대전의 당사국인 미국과 관계를 경직시키는 방아쇠로 작용해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재임 중 꾸준한 참배로 한일 관계를 크게 악화시켰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2013년 참배는 미국마저 강하게 비판했다. 아베 전 총리는 그 뒤 재직 중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했다.
아베 전 총리를 향한 미국 국무부 비난 성명에 ‘실망(disappointed)’이라는 문구를 넣도록 주도한 것은 당시 미국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기시다 총리가 야스쿠니에 직접 참배를 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의견이 많다. 현직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참배가 마지막이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2021년 10월 취임 뒤로 꾸준히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해온 만큼 공물 봉납은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가 나아지고 있던 올해 4월 춘계 예대제(例大祭, 큰 제사) 때도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공물을 봉납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8일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가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공물 봉납을 할 예정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총리가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기시다 총리가 아니더라도 내각 주요 인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단행할지 여부에도 이목이 쏠린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8월15일 일본 현직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지난해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과 아키바 겐야 부흥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5월21일 히로시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한미일 정상회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SNC) 전략소통조정관은 9일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모시고 한미일 3국 관계의 중요성에 관해 역사적 의미를 갖는 논의를 고대하고 있다"며 "논의할 것이 매우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7월29일 미국 메인주 프리포트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관련 모금 행사에 참석해 “(캠프 데이비드에) 일본과 한국 정상을 데려올 것”이라며 “그들은 제 2차 세계대전 뒤로 화해를 일궈냈고 이는 근본적인 변화”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6월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가토스에서 진행한 연설에서도 “나는 일본의 참여를 끌어내 그들의 한국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노력했다”며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과거와 달라졌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뒤 한국과 화해했다”며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은 최초로 다자 정상회의를 계기로 진행된 것이 아닌 단독으로 개최되는 3국 정상회의이기 때문에 깊은 의미를 지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 외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대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7월31일 워싱턴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과 친분, 한·미 관계와 한미일 3자 협력과 관련해 매우 각별히 생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정례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은 11일 램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미국·일본이 3국 회담을 정례화해 매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매뉴얼 대사는 10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미일 3국은 매년 정상회담을 개최하는데 합의할 것”이라며 “정례화 결정을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기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또한 13일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캠프 데이비드는 한미일 3국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연 21세기 외교사의 현장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핵심 골격을 만들고 이를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