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당국이 최근 금융권의 잇딴 사고로 체면을 구긴 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 도입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최고경영자(CEO)에게도 내부통제 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핵심으로 한다. 이에 따라 주요 금융지주는 긴장감 속에서 책무구조도 작성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에 힘을 실으며 입법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주요 금융지주들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책무구조도 마련에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
14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의원 입법은 정부 입법과 비교해 법안 처리 속도가 빠르고 시행 시기도 앞당길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금융당국은 경남은행 횡령 사고를 비롯해 은행권에서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사고가 잇따르자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에 더욱 속도를 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이 서둘러 시행을 추진하고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책무구조도 도입에 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내부통제 책무를 사전에 명확히 구분하고 이를 문서화한 것이다. 영국, 싱가포르 등 금융 선진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금융지주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최고경영자가 책무구조도를 마련하고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한 뒤 금융당국에 이를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적정성 여부를 승인받는 것은 아니지만 당국은 필요하다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부여된 내부통제 의무만으로는 임직원의 의식과 행동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고 보고 책무구조도 도입을 결정했다.
금융지주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공포되고 1년 뒤부터 법안 적용을 받지만 금융당국이 특히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법안 통과 뒤 최대한 빠른 시기에 도입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7월 신한라이프 강연에서 “책무구조도를 법령 통과 뒤 조기에 도입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책무구조도 도입 논의가 이뤄질 때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한 금융지주로 평가된다.
신한금융지주는 책무구조도 초안을 만들어 지주 및 은행 임원진에게 공유한 뒤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원들이 내부통제 관련 의무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인식을 바꾸는 데도 힘쓰고 있다.
다른 금융지주들도 책무구조도 도입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금융위원회는 6월22일 책무구조도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속도감 있게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당장은 법안 초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책무구조도의 세부내용을 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의원 입법 초안이 나오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책무구조도 도입과 관련해 외부 컨설팅 회사를 알아보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의원 법안이 발의되면 금융지주마다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질 가능성도 떠오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들이 책무구조도 관련해 방향성이 나오면 바로 작성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9~10월쯤 법안 초안이 나오면 책무구조도 작성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윤석열정부 들어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강화를 특히 강조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서 잇따라 사고가 터지면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시스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8월 들어서만 경남은행에서 500억 원대 직원 횡령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KB국민은행에서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7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이 적발됐다.
또 대구은행에서는 직원들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1천여 개의 예금 연계 증권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적발됐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