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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 참석했다. <뉴시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9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이 총재는 지난 100일 동안 한국은행을 빠른 속도로 ‘이주열의 한은’으로 바꿔놓았다.
취임 이틀 만에 간부인사를 단행한데 이어 지난달 총 56명의 국실부장 중 절반이 넘는 29명을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를 실시했다.
이 총재의 인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졌다. 하나는 김중수 전 총재 시절 발탁됐던 이른바 ‘김중수 키즈’들을 주요 직책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지난 5월 박원식 전 부총재를 물러나게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다른 한 가지는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정통 한은맨들을 다시 복귀시킨 것이다. 특히 이들 대부분은 이 총재의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이러한 인사를 통해 친정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이 총재의 복안으로 보인다.
◆ 좋은 시절 끝난 ‘김중수 키즈’들
지난 4일 강태수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내년 4월까지 약 10개월 간 임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조기사임한 것이다. 강 부총재보는 “저의 퇴임 결정이 우리 조직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강 부총재보가 자진해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금융권은 이주열 총재의 ‘김중수 지우기’ 인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놨다. 강 부총재보는 이 총재와 대립했던 김중수 전 총재에게 발탁돼 부총재보로 승진한 대표적 ‘김중수 키즈’다. 이 때문에 이 총재 취임 직후부터 곧 물러날 것이라는 조기사퇴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총재가 차기 한은총재로 내정됐을 때부터 한은 내 김중수 라인에 대한 물갈이 인사는 어느 정도 예고됐다. 연공서열을 무시한 김 전 총재의 발탁인사에 대한 이 총재의 불만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2012년 한은 부총재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60년에 걸쳐 만들어진 한은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돼 혼돈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재의 인사를 정면비판하는 ‘작심발언’이었다.
이 총재는 지난 3월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전 총재의 인사정책을 넌지시 비판했다. 그는 “현 총재가 (인사 문제에 있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매우 중요한 일인 만큼 원칙을 지키는 인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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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개월이나 되는 임기를 남겨두고 스스로 물러난 박원식 전 한국은행 부총재(왼쪽)와 강태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오른쪽)는 모두 '김중수 키즈'로 불린다. |
이 총재 취임 이후 가장 먼저 물러난 김 전 총재 측 인물은 박원식 부총재였다. 박 부총재는 지난 5월9일 물러났다. 박 부총재도 강 부총재보와 마찬가지로 임기가 내년 4월에 끝나지만 끝까지 버티기 어려웠다. 박 부총재는 김중수 키즈의 핵심으로 불리며 한은 내부에서 꾸준히 사퇴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재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이른바 ‘독수리 5남매’들을 요직에서 멀리 보내는 인사도 이뤄졌다.
지난 달 18일 국실장급 간부인사에서 성병희 거시건정성분석국장이 대구경북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상대 국제국장과 이중식 금융결제국장은 각각 뉴욕사무소장과 인재개발원장을 맡게 됐다. 신운 조사국장만이 자리를 지켰다.
◆ ‘올드보이’들의 화려한 귀환
김중수 키즈들이 요직에서 물러나면서 한은을 퇴임했던 인물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지난 달 23일 박원식 전 부총재의 후임으로 임명된 장병화 부총재는 한은의 대표적 ‘올드보이(Old Boy)’로 불린다.
장 부총재는 1977년부터 2012년까지 35년 동안 한은에 몸담았던 ‘정통 한은맨’이다. 그는 한은 조사국과 정책기획국(현 통화정책국) 등 핵심요직을 거쳤다.
장 부총재는 이 총재의 신임을 받는 ‘이주열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 총재와 장 부총재는 한은 입사동기다. 다만 이 총재가 장 부총재보다 두 살 더 많고 군대경력이 있어 선배가 됐다. 이 총재가 2009년 부총재를 맡았을 때 장 부총재는 통화정책담당 부총재보를 지내며 이 총재를 보좌했다. 두 사람이 한은을 떠난 시기도 2012년 4월로 같다.
지난 달 말 정년퇴임한 이흥모 전 발권국장은 강태수 부총재보의 빈자리를 채울 차기 부총재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전 국장은 1981년 한은에 입행한 후 조사국과 정책기획국을 거쳤다. 그 역시 핵심보직을 거쳤지만 김 전 총재가 조직개혁이란 명목으로 단행한 인사에 따라 경제연구원 자문이라는 한직으로 좌천됐다.
이 전 국장은 이 총재가 신뢰하는 인물로 꼽힌다. 이 총재는 조사국 시절 이 전 국장과 함께 일했는데 당시 그를 높게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이 총재가 내정자 시절 ‘인사청문회 준비 태스크포스(TF)’ 팀장에 이 전 국장을 임명한 것도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전 국장은 퇴임 전까지 한은 내부개혁을 위한 경영개선 TF팀을 맡았다.
김 전 총재 시절 빛을 보지 못한 인물들의 귀환도 이어졌다. 지난 4월 단행된 인사에서 임형준 전 통화정책국 부국장과 김현기 전 통화정책국 자본시장팀장이 각각 인사경영국장과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두 사람은 모두 청문회 TF에 참여했다.
6월 인사에서 윤면식 전 프랑크푸르트소장과 허진호 전 대구경북본부장, 박성준 전 제주본부장이 모두 핵심보직에 임명됐다. 윤 전 소장은 통화정책국장에 임명됐고 허 전 본부장과 박 전 본부장은 각각 금융시장부장과 공보실장을 맡게 됐다.
이러한 인사는 이 총재가 밝혔던 인사원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총재는 취임식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실적과 평판을 가장 중요한 인사평가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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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월1일 제25대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했다. <뉴시스> |
◆ ‘김중수 지우기’의 빛과 그림자
이 총재가 취임했을 당시 한은 내부에서 김 전 총재 시절 발탁됐던 인사들에 대한 퇴진요구가 이어졌다. 박원식 전 부총재와 강태수 전 부총재보가 대표적 인물이었다. 한은 내부게시판에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야 한다’는 뜻을 담은 효경의 한 구절인 ‘회총시위(懷寵尸位)’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김 전 총재는 재임기간 연공서열에 따르지 않은 파격적 발탁인사를 단행했다. 김 전 총재는 “신의 직장이나 철밥통이란 수식어를 던져 버리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한은으로 태어나자”고 말했다.
한은이 가지고 있는 폐쇄적 조직문화와 엘리트주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취지는 좋았지만 너무 급히 진행된 개혁이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컸다. 김 전 총재는 자기 사람들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적을 만들었다.
한은은 이른바 ‘김중수 라인’과 그 외로 분열됐다. 이 총재는 2012년 당시 퇴임사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은 조직 안정화를 인사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이 총재의 인사원칙은 어느 정도 합당하다고 한은 관계자들은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 총재가 내정됐을 당시 분열된 내부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지목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총재가 과도하게 김중수 지우기에 매달린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임원들의 임기는 완전보장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박원식 전 부총재가 자진사퇴하자 “임기 전에 나가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좋은 기회가 있어 나가겠다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존입장을 바꿨다. 결국 강태수 전 부총재보까지 이달 스스로 물러난 것도 이 총재의 이런 생각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의 인사가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전 총재의 인사정책은 외부인사를 적극 영입해 한은의 폐쇄적 조직문화를 쇄신하고 인사적체를 해소하려 했다는 점에서 나름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반면 이 총재의 인사는 다시 한은의 열린 문을 걸어 잠그는 ‘그들만의 리그’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