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아인슈타인 휴지통과 테슬라 일론 머스크 감상법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일론 머스크는 대학(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물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전기차 테슬라와 우주기업 스페이스X 등을 이끌고 있는 그는 “기업가 정신은 유리를 씹어 먹으면서 뜨거운 석탄 위를 걷는 것과 같다”(Entrepreneurship is like eating glass and walking on hot coals at the same time.)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비즈니스포스트] 1933년 10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당시 53세)이 독일을 떠나 새로운 조국 미국에 도착했을 때다. 새 직장인 프린스턴고등연구소(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사무실을 둘러보던 그는 “어떤 사무집기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책상이나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 종이와 연필, 그리고 ‘내가 실수한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는 대형 휴지통’(large wastebasket, so I can throw away all my mistakes)이면 됩니다.”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아인슈타인 전기) 

실수(또는 실패)를 담을 대형 휴지통이라니? 천재 과학자의 유쾌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아인슈타인의 휴지통은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들로 가득찼을 것이다. 그랬다. 천재의 힘은 ‘긍정 모드’에 있었다.  

여기 에너지 넘치는 꽤나 유별난 또 한 명의 천재가 있다. 그의 생각과 발상은 마치 트램펄린 위에서 팡팡 뛰며 노는 듯하다.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모터스와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거느리고 이제 트위터까지 손에 넣은 일론 머스크(Elon Musk)다.

스페이스X를 설립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는 옵션일뿐 입니다. 실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충분히 혁신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Failure is an option here. If things are not failing, you are not innovating enough.) 

지난 4월의 교훈을 다시금 되돌아보자. 스페이스X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발사체인 스타십(starship) 발사에 실패했다. 발사대에서 치솟은 지 4분 만에 폭발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언론에 비친 머스크의 표정은 크게 실망한 얼굴이 아니었다. 마치 실패를 축하(?)라도 하는 듯 태연했다. 

“역사상 가장 값비싼 폭죽으로 기록됐다”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머스크는 “성공적인 실패”(successful failure)라고 자평했다.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뭘까? 그에겐 ‘빠르게 실패하지만, 더 빠르게 성공한다(Fail Fast, Succeed Faster)’는 강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뇌는 물리학적 사고를 넘어 ‘문샷 사고(Moonshot Thinking)’로까지 이어진다. ‘문샷 사고’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달성 목표로 삼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설명을 좀 붙이자면 이렇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 계획은 ‘미친 짓’(?)이었고 불가능해 보였다. 달에 가기 위한 지식과 기술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달(moon)로 쏘아올린(shot) 불가능 프로젝트는 현실이 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그런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한다. 머스크가 ‘문샷 사상가(Moonshot Thinkers)’라는 얘기다.

세계적인 인지과학자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은 “인간의 뇌가 하는 일 중에서 ‘미래를 만드는 일(making future)’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머스크에게 적용하면 그가 펼치는 미래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전기차용 충전소(수퍼차저 스테이션)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기를 공급하는 솔라시티, 스페이스X를 통한 화성 식민지 계획, 차세대 교통수단 하이퍼루프(반진공 상태의 원통형 튜브 안에서 공기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달리는 자기부상 초고속열차) 구상까지 말이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아인슈타인 휴지통과 테슬라 일론 머스크 감상법

▲ 지난해 미국 전기차 판매 1, 2위는 모두 테슬라 차종(모델Y, 모델3)이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테슬라의 시장 점유율은 2020년 79.4%, 2021년 68.2%, 2022년 65.4%로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그럴진대 머스크의 미래 행보에 일찌감치 멍석을 깔아준 사람도 있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다. 그는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것보다 일론 머스크에 돈을 주겠다”(I'd Give Money to Elon Musk Before Charity)고 했다. 이유는 머스크가 ‘세상을 변화시킬(change the world)’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제 전기차로 얘기를 좁혀본다. 머스크는 “경쟁하지 않는다. 앞서갈 뿐이다”는 말로 테슬라의 혁신을 설명한다. 사실 테슬라를 창업한 건 머스크가 아니다. 

2003년 7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마크 타페닝(Marc Tarpenning)과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가 테슬라다. 이들은 자금 확보를 위해 투자자 물색에 나섰는데 여기에 의기투합한 사람이 머스크였다. 

머스크는 개인 자금 750만 달러를 투자해 회장을, 마틴 에버하드는 CEO를 맡았다. 하지만 몇 년 후 머스크가 에버하드를 해고하면서 불화를 겪기도 했다. 

알려져 있듯이 테슬라 브랜드는 19세기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에서 따왔다. 니콜라 테슬라는 세계 최초로 실용적인 교류모터를 발명했으며 에디슨과 직류, 교류 전쟁(영화 ‘커런트 워’로도 유명)을 벌였던 위대한, 하지만 잊혀진 발명가였다.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접수하면서 ‘테슬라 효과(Tesla Effect)’라는 말까지 생겼다. ‘테슬라 효과’는 신생기업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내면서 기존 대기업들이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상을 말한다. 2013년 7월 그런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 완성차 업체 GM의 최고경영자 댄 애커슨(Dan Akerson)은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테슬라는 시장의 강력한 파괴자가 될 수 있다”며 강한 위기감을 표했다. 애커슨은 그러면서 테슬라를 연구하는 태스크포스, 일명 ‘팀 테슬라(Team Tesla)’ 구성을 지시했다. 

재밌는 사실 하나. 세계 최초로 양산형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은 건 바로 GM이었다. 1996년 전기차 EV1을 출시했다. 하지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출시가 아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주의 대기자원위원회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배출가스가 전혀 없는 ZEV(Zero Emission Vehicle)를 일정량 판매하도록 하는 법규를 만들었다.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은 팔면 팔수록 적자가 확대되는 전기차 제조를 달가워 하지 않았다.  결국 자동차업계와 석유 메이저들의 로비로 캘리포니아주의 법규는 무력화됐다. GM의 EV1 프로젝트는 2002년 중단됐고 급기야 만들어진 차량들을 회수해 보란 듯이 폐기해 버렸다. 

복기해 보자면 GM은 10억 달러가 투입된 EV1 프로젝트를 스스로 죽여버리고 말았는데 그만큼 전기차 시장 재진입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전기차 시장은 2019년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해 10월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공헌한 세 과학자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면서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그들은 충전 가능한 세상을 만들었다”(They created a rechargeable world.)는 말로 공로를 인정했다. 2차전지 연구자들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 사회가 BoT 시대로 깊숙하게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BoT(Battery of Things)는 모든 사물이 배터리로 연결되는 세상을 말하는데 이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IoT(Internet of Things: 사물 인터넷)에 이은 또 하나의 기술 혁명인 셈이다.

현재 BoT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전기차 시장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2차전지 분야다. 대세인 리튬 이온 전지를 세계 최초(1991년)로 상용화 한 기업은 소니였다. 그렇지만 일본은 배터리 최강국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리딩기업 토요타가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니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맞물리면서 일본은 2010년 이후 2차전지 시장에서 뒷걸음치고 말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일본 기업들이 테슬라의 연착륙에 상당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새 공장을 짓는 대신 과거 토요타와 GM이 설립한 공장(NUMMI: 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 Inc: 2009년 폐쇄)을 싼 값에 사들여 리모델링하면서 비용을 절감했다. 토요타는 그런 테슬라에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파나소닉도 테슬라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테슬라의 여러 차종에 파나소닉에서 만든 리튬 이온 배터리가 장착됐다. 파나소닉 역시 테슬라에 3천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두 회사는 네바다주에 미국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기가팩토리)을 건설해 함께 운영 중이다

그런 테슬라에게 2016년은 퀀텀 리프(quantum leap)의 해였다. 토요타와 파나소닉의 긴급 투자로 자금 숨통이 트이면서 테슬라는 그해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머스크의 입이 찢어질 만도 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아인슈타인 휴지통과 테슬라 일론 머스크 감상법

▲ 머스크와 그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Maye Musk·73). 싱글맘으로 세 자녀를 키운 메이 머스크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국제적인 슈퍼모델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아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론은 어려서부터 읽은 건 다 기억했다. 언제나 정보를 빨아들이는 아이였다. 우리는 일론을 ‘백과사전’ 또는 ‘천재 소년’이라 불렀다.”(‘메이 머스크: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 문학동네, 2022) <일론 머스크 트위터>

자, 이제 머스크 뒷담화(?)를 좀 해보자. 머스크가 대단한 혁신의 아이콘인 건 맞지만 그는 단점도 만만찮다. 독선적이면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거기다 논란과 논쟁을 달고 다니는, 어느 먼 우주의 안드로메다에서 온 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니 ‘바람직한 기업인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분석하고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바둑에 맥점(脈點)이란 게 있다. 판을 뒤집거나 승패를 가르는 한 수를 의미한다. 맥점 하나로 단박에 반상의 상황이 역전되듯, 머스크는 혁신이라는 엔진으로 시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2003년(테슬라 창업) 전기차 시장 주변부에 겨우 한 발을 걸쳤던 그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일론 머스크는 바둑의 정중앙을 의미하는 ‘천원(天元)’에 단단히 말뚝을 박았다. ‘완벽한 게임 체인저’는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