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역보복이 마이크론 '137조' 투자 촉매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위협

▲ 미국 마이크론이 중국 정부의 무역보복을 계기로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마이크론이 중국 정부의 무역보복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 대만에 메모리반도체 생산 투자를 더 공격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 한가운데 놓여 양쪽에서 압박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입지를 지켜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2일 대만 타이페이타임스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025년부터 대만 타이중에 EUV(극자외선) 공정을 활용하는 첨단 미세공정 D램 생산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에 36억 달러(약 4조7500억 원)를 들여 동일한 공정의 D램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지 며칠만에 대만에도 신규 투자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EUV를 활용하는 미세공정 D램은 기존 공정보다 반도체 생산성과 성능, 전력효율 등을 모두 높일 수 있는 메모리반도체 핵심 기술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를 늘리며 시장 지배력을 굳혀가고 있는 분야에 마이크론도 공격적 생산 투자를 예고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마이크론은 이미 미국 뉴욕주에 앞으로 최대 1천억 달러(약 131조8300억 원)를 들여 대규모 메모리반도체 생산단지를 구축하고 정부 지원을 받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대만과 일본 공장까지 동시에 건설이 추진되면 메모리반도체 물량 공세를 통해 상위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강력하게 위협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화로 최소 137조 원에 이르는 마이크론의 투자 확대 계획은 중국 정부가 미국의 강도 높은 반도체 수출규제에 대응해 무역보복 조치에 나선 뒤 발표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마이크론의 반도체가 정보 보안과 관련해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며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중국에서 일부 반도체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결정했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공급망을 압박하기 위해 핵심 장비와 소프트웨어 수출을 제한하자 중국 정부 차원에서 마이크론을 상대로 무역보복에 나섰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마이크론이 미국에 이어 대만과 일본에 첨단 메모리반도체 투자를 늘리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중국시장을 완전히 놓칠 가능성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을 대폭 늘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상위 기업들에 우위를 갖춰내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 중국시장에서 받게 될 타격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이크론을 향한 금전적 지원을 적극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무역보복이 마이크론 '137조' 투자 촉매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위협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

바이든 정부가 이미 마이크론을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주요 지원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었던 데다 메모리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이 중국 정부의 무역보복에 타격을 입는다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기업으로 꼽혔다.

두 기업이 모두 중국에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을 운영하며 현지 고객사 수요에 대응하고 있어 마이크론의 물량을 대체하며 공급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해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 중단을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만큼 수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론이 중국 정부의 제재를 투자 확대 계기로 삼아 한국 반도체기업을 향한 추격을 본격화한 만큼 부정적 영향이 더 커질 수 있다.

만약 중국이 마이크론의 반도체 구매를 일부 중단하고 한국 반도체기업에서 이를 사들이지도 못하게 된다면 자국 기업을 통해 이를 대체하려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푸젠진화와 YMTC를 비롯한 중국 메모리반도체기업의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자급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결국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압박을 받으면서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지위를 지켜내는 데 고전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무역 전쟁이 마이크론을 향한 중국의 무역보복으로 구체화되며 한국 반도체기업에도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셈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중국이 마이크론을 대상으로 제재에 나선 여파는 예상보다 훨씬 크게 확산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