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가시 테츠로 라피더스 회장이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TSMC와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상위 기업에 격차를 좁히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 주도로 신설된 반도체기업 라피더스가 수 년 안에 TSMC와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상위 기업과 기술 격차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좁힐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1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라피더스는 2027년부터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대량생산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히가시 테츠로 라피더스 회장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러한 계획을 언급하며 “남들이 이미 갔던 길을 따라가서는 큰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라피더스가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TSMC와 삼성전자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올린 미세공정 파운드리 기술력을 라피더스는 약 4년만에 비슷하게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라피더스가 2027년 양산을 예고한 2나노 파운드리 공정은 삼성전자와 TSMC가 2025년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는 기술이다.
일본 정부와 현지 기업들의 공동 출자를 통해 라피더스가 지난해에서야 설립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기술 발전 속도를 실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 조사기관 옴디아는 블룸버그를 통해 “라피더스는 극단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과제를 시도하려 하고 있지만 여러 협력사 기반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글로벌 반도체장비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국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술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히가시 회장은 2027년 2나노 공정뿐 아니라 차세대 1.4나노 기술도 멀지 않은 시점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양한 소재 및 장비기업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4나노 미세공정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2027년 양산을 추진하고 있는 기술이다. 라피더스가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히가시 회장은 라피더스가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춰내었다며 일본 반도체 장비와 소재기업들이 완벽한 공급망 체계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라피더스가 인공지능 반도체와 같은 신사업에 집중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며 큰 성장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라피더스의 이러한 공격적 목표 달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주체는 미국 IBM과 일본 정부로 꼽힌다.
▲ 미국 IBM의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웨이퍼 이미지. |
IBM은 세계 최초로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시범 생산에 성공했는데 라피더스 설립과 동시에 전면적인 기술 협력을 약속하며 파운드리시장 진출에 핵심 역할을 맡게 됐다.
일본 정부는 최근 홋카이도에 설립하는 라피더스 반도체공장에 3300억 엔(약 3조2428억 원)의 지원을 확정했고 앞으로 매년 비슷한 수준의 금전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블룸버그는 일본이 이러한 지원 정책이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반도체산업 육성 방안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수준이라 볼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 유럽을 뛰어넘는다고 바라봤다.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됐던 글로벌 첨단 파운드리시장에서 라피더스가 중요한 경쟁기업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라피더스의 수장으로 이러한 목표 달성에 주력하고 있는 히가시 회장은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도쿄일렉트론의 사장을 거쳐 라피더스의 경영을 총괄하게 됐다.
2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양산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쿄일렉트론을 비롯한 일본 내 반도체장비 및 소재업체들과 라피더스의 협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는 “일본 반도체산업 재건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가 히가시 회장 한 사람의 손에 달리게 됐다”며 앞으로 그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히가시 회장은 앞으로 라피더스의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공개(IPO)를 비롯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궁극적으로 독립적 운영이 가능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라피더스는 홋카이도공장 설립과 2나노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는 2027년까지 자체적으로 매출을 내기 어려운 만큼 당분간 일본 정부와 현지 기업들이 출자하는 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