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반도체 지원법 성공할까, 삼성전자 TSMC 투자 유치가 관건

▲ 유럽연합(EU)이 반도체 지원법 시행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본부.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반도체 지원법이 4월 중 의회와 회원국 승인을 거쳐 시행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반도체기업의 생산 투자 등에 제공하는 보조금 규모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과 맞먹는 만큼 삼성전자와 TSMC의 공장 유치에 성공할 지 여부가 관건으로 꼽힌다.

6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 의회 및 회원국은 이르면 18일 반도체 지원법 관련 안건을 승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에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 오던 430억 유로(약 61조7천억 원) 규모 반도체 보조금 제공 계획이 본격적으로 법제화와 시행 절차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에 대응하기 위해 논의되어 왔다. 지원 규모도 미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을 앞세워 삼성전자와 TSMC, 인텔과 마이크론 등 여러 반도체기업의 대규모 생산공장 유치에 성공하자 유럽연합도 뒤를 따른 것이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정책을 발빠르게 따라잡지 않으면 이러한 투자 기회를 대부분 미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자체적으로 반도체 지원법을 추진해 왔다.

반도체 공급망을 유럽 내에 구축하는 일이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자동차와 인공지능 등 주요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반영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와 구형 레거시 공정 반도체, 관련 공급망 기업 등의 투자를 폭넓게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추진 방안을 발표했을 때부터 글로벌 반도체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불이 붙었던 것과 달리 유럽연합의 지원 정책은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인텔이 독일 등 여러 국가에 반도체 생산공장과 연구개발센터 설립 계획을 내놓은 반면 삼성전자와 TSMC 등 파운드리 상위 업체의 투자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대표적 근거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TSMC가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7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는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서버,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는 물론 군사기술 분야에도 핵심으로 꼽힌다.

이들 기업의 공장 유치에 실패한다면 유럽연합의 대규모 지원 계획은 미국과 달리 실질적으로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 하는 정책에 그치게 될 수 있다.

TSMC는 최근까지 독일에 자동차용 반도체 등을 위탁생산하는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미국 내 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한 뒤 유럽 투자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판 반도체 지원법 성공할까, 삼성전자 TSMC 투자 유치가 관건

▲ 인텔이 독일에 신설하는 반도체 생산공장 예상 조감도.

삼성전자와 TSMC가 미국과 달리 유럽에 뚜렷한 투자 계획을 제시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선 미국보다 고객사 기반이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다는 점이 꼽힌다.

미국에는 퀄컴과 엔비디아, AMD와 애플 등 대규모 수요를 주도하는 대형 반도체 설계기업들이 다수 위치하고 있지만 유럽에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핵심 고객사가 적기 때문이다.

유럽 반도체공장의 주요 고객사는 자동차용 반도체 전문기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이 필요로 하는 물량이나 기술 수준이 비교적 낮다는 점도 반도체기업들이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약점으로 남을 수 있다.

인텔을 중심으로 시스템반도체 생산을 위한 공급망 및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충분한 미국과 달리 유럽에는 투자 기반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결국 유럽연합이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기업들에 활발한 러브콜을 보낸다고 해도 삼성전자와 TSMC 입장에서는 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최근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받는 기업이 매출 전망과 같은 민감한 정보를 제출하고 초과 이익을 일부 미국에 환원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또한 해당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투자도 제한하는 규정을 포함했다.

회사의 이익과 중국사업의 중요성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삼성전자 및 TSMC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유럽연합이 반도체 지원법을 시행하며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선다면 삼성전자와 TSMC도 유럽에 신규 공장을 설립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는 “유럽연합은 반도체 생산 측면에서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10년 안에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