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31일 오전 KT 주주들이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제41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이사회 정식 구성원은 단 1명뿐이다. 그것도 사외이사다. 정식으로 임명된 CEO도 없다.
어느 작은 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출 25조에 50여 개 계열사, 직원 5만여 명인 우리나라 굴지의 통신기업 KT가 놓인 상황이다.
KT는 정치권 외풍에 휘말려 3번이나 선임 절차를 치르고도 다음 CEO를 뽑지 못했다. 이에 회사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앞으로 최소 5개월 동안 '박종욱 대표 대행' 체제로 불안하게 흘러가야 한다.
KT에 새 CEO가 뽑힌다고 해도 새로 경영전략을 마련하다 보면 올해는 그냥 흘러갈 공산이 크다. 전임 구현모 대표이사 사장의 '디지털플랫폼기업(디지코)' 전략을 바탕으로 한 질주도 당분간 멈춰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한부 CEO 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새 CEO 선임 절차를 잘 관리하는 일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렇게 지배구조가 불안해지며 기업가치도 후퇴했다. 지난해 9월 한 때 4만 원까지 바라보던 KT 주가는 올해 들어 정부와 여당의 압박이 커지면서 급전직하해 3만 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통신업계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KT CEO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KT 차기 대표로 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대선 캠프 등을 거쳤던 친정권 인사라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물론 현 정부와 국민의힘이 대놓고, 그것도 거친 말까지 앞세워가며 KT CEO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작 KT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
KT에 불어닥친 정치권의 외풍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상당히 있다. 정부 정책에 크게 좌우되는 통신업체라는 특성도 있겠으나 KT도 지금껏 정치권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 그 원죄가 이번 CEO 공석 사태를 부른 측면도 없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구현모 전 대표에 이어 차기 CEO로 내정됐다가 중도 사퇴한 윤경림 사장부터 당장 정치권에 기대려는 모습을 보였다.
윤경림 사장은 KT 신임 사외이사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캠프 출신인 임승태 전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내세웠다. 임 고문이 KDB생명 대표에 오르면서 결국 이 구상은 무산됐다.
윤 사장은 핵심 계열사 KT스카이라이프 대표에도 윤 대통령과 동문인 윤정식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을 내정했다. 논란이 커지자 윤 부회장은 KT스카이라이프 대표 자리를 결국 고사했다. 정치권의 외풍에 방패막이를 삼기 위해 여권 인사를 내세우려다 결국 모양새만 구긴 셈이다.
정치권에 기댔던 건 전임 CEO들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임명됐던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 회장은 2017년 연임 뒤 정권교체가 되자 사외이사에 노무현 정부 시절 인사와 문재인 대선캠프 인사를 앉혔다. 후임으로 2020년 대표에 오른 구현모 사장은 이들을 연임시켰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 KT 대표가 된 이석채 전 회장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대거 경영진에 앉혔다. KT는 2002년 지분 구조만 민영화됐을 뿐 공기업의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지배구조에서는 '내부 카르텔'과 '정치권 낙하산'의 양상이 두드러졌다.
박종욱 대표 직무대행은 KT 비상경영위원회 아래 새로운 지배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박 대표 직무대행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넘어서는 지배구조로 개선하고 국내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CEO 인사에 개입했던 정치권에서 KT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 없이 독립적 지배구조를 가지도록 놔둘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이 많다. KT의 기업가치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할 공산이 커 보인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