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든 무어 인텔 공동창업자가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무어의 법칙'은 삼성전자와 TSMC 등 주요 반도체기업의 기술 경쟁을 이끄는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텔> |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는 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 반도체시장의 발전을 관통한 핵심 키워드로 꼽히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남겼다.
인텔이 장기간 글로벌 반도체 1위 기업으로 부동의 자리를 유지하는 데 기여해 온 무어의 법칙은 이제 시스템반도체 기술 선두기업으로 자리잡은 삼성전자와 TSMC가 이어가고 있다.
2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고든 무어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개척자 가운데 한 명이자 반도체산업의 성장 토대를 구축한 혁신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는 고든 무어의 일생과 업적을 조명하는 기사에서 그가 남긴 무어의 법칙이 여전히 수많은 반도체기업의 대규모 투자 등 결정에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고든 무어는 현지시각으로 24일 하와이에 있는 자택에서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텔은 사망 소식을 알리며 인텔의 성장에 그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경제 대공황이 발생한 1929년 태어난 고든 무어는 캘리포니아 산호세 주립대와 캘리포니아 공대(칼텍)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화학 분야 전문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거치면서 반도체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고 1968년에는 페어차일드 창업자인 로버트 노이스와 함께 인텔을 설립했다.
고든 무어가 미래 반도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예측하며 내놓은 무어의 법칙은 인텔이 설립되기 이전인 1965년에 발표됐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에 탑재되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랜지스터의 수와 집적도가 반도체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만큼 반도체 기술이 그만큼 비약적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는 관측을 제시한 셈이다.
인텔의 창업은 결국 고든 무어가 이러한 비전을 직접 실현하기 위해 내놓은 강력한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IBM과 인텔 등 기업이 주도하던 반도체 기술 발전은 대부분 무어의 법칙에 맞춰 이뤄지면서 고든 무어의 ‘선견지명’을 증명했다.
고든 무어는 당초 트랜지스터 수가 매년 2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지만 1980년 이후 반도체 집적도가 한계를 맞으면서 2년마다 2배로 증가하게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후 반도체 기술이 더욱 고도화되면서 트랜지스터 집적도의 물리적 한계를 맞자 무어의 법칙은 점차 반도체의 꾸준한 기술 발전을 상징하는 표현에 가깝게 자리잡게 됐다.
결국 고든 무어가 제시한 본래의 의미보다는 그 철학에 더욱 집중하게 된 것이다.
블룸버그는 반도체 기술 발전이 PC의 시대에는 인텔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아시아 지역의 경쟁사에 주도권이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이제는 시스템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에서 선두 기업에 등극한 삼성전자와 TSMC가 인텔을 대신해 무어의 법칙을 사실상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공정에 쓰이는 웨이퍼 이미지. |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3나노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면서 미세공정 파운드리 분야에서 기술력이 가장 앞선 기업에 등극했다. TSMC가 지난해 말부터 양산을 개시하며 뒤를 따르고 있다.
파운드리 미세공정 기술은 인공지능 반도체와 같이 차세대 첨단 산업에 핵심이 되는 반도체의 높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중요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넘어 2나노와 1.4나노 등 차세대 미세공정 도입 계획도 공식화하며 기술 선두를 유지하겠다는 데 강력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TSMC는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2나노 반도체 공장 투자를 시작했고 향후 1나노 반도체 생산설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도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입지를 회복하려는 인텔의 추격도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인텔은 2나노 반도체를 삼성전자 및 TSMC보다 더 먼저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고든 무어가 남긴 무어의 법칙은 이처럼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의 기술 경쟁을 자극하는 동시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측한 반도체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해 인터뷰를 통해 “인텔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무어의 법칙을 선도하며 이를 계속 유지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을 창업한 고든 무어의 정신을 계승해 반도체 기술 선두를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TSMC도 미세공정 기술 발전을 위한 연구개발 및 생산 투자에 상당한 역량을 들이고 있는 만큼 시스템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지는 데 기여한 카버 미드 MIT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무어의 법칙은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한 핵심 철학”이라며 “앞으로 50년 동안 첨단 기술 발전을 자극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