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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학수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
삼성그룹 2인자의 직함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미래전략실장 등으로 변했지만 역할은 하나였다. ‘1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오너를 위해 일했다.
삼성그룹에서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시기에 여러 명이 2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삼성그룹의 2인자다운 2인자는 단 두 명이었다. 소병해 비서실장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삼성그룹의 2인자 자리에 오른 13명 가운데 가장 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둘 다 하루아침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비운을 겪었다.
그 비운의 씨앗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였다.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 시절 2인자였던 소병해 비서실장을 물리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룹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소 실장의 눈치를 보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이 회장은 또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삼성그룹 내부에 ‘이학수 사단’을 만든다고 의심했다.
모두 2인자의 운명이었다.
◆ ‘이학수 사단’을 만든다는 의심에 퇴출
최지성 부회장 이전에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있었다. 이학수 전 삼성물산 고문은 1996년부터 14년 동안 2인자로 자리해 ‘이건희의 오른팔’로 불렸다.
이 전 고문은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이다.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삼성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가를 듣는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삼성그룹의 한 전직 사장은 “이학수 고문은 이 회장의 의중을 잘 읽고 충성심도 강해 이건희 회장의 복심이라 불릴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과거 비서실장의 임기는 3년을 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지만 이 고문을 14년 동안이나 2인자로 두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전 고문은 2010년 갑자기 삼성물산 고문으로 임명되며 2인자 자리에서 내쳐졌다.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이후를 겨냥해 삼성그룹 내부에 ‘이학수 사단’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당시 삼성의 한 전직 사장은 “이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특검 이후 대중 앞에 나설 수도 없을 만큼 큰 상실감을 겪었지만 이 고문은 힘이 더 세져 심지어 이 고문이 삼성의 주인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고 말했다.
1인자에 대한 그림자 보필을 넘어 이재용 부회장에게까지 위협이 될 상황이 되자 결국 토사구팽 당했다는 것이다.
◆ 계열사 사장이 소병해 눈치보자 물리쳐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전에 소병해 비서실장이 있었다. 소병해 전 비서실장은 1978년 이병철 회장의 비서실장이 된 뒤 12년 동안 2인자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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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병해 전 삼성 비서실장 |
소 전 실장은 36세의 젊은 나이에 비서실장이 됐다. 이병철 회장이 숨지고 이건희 회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뒤에도 비서실장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3년 뒤 1990년 이건희 회장은 소 전 실장을 삼성생명 부회장으로 내보냈다.
소 전 실장은 이병철 명예회장의 분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최측근이었다. 그는 생전에 삼성 반도체의 영광을 이건희 회장이 아닌 이병철 회장에게 돌리기도 했다.
소 전 실장은 강한 추진력과 엄격한 관리로 비서실의 기능을 크게 강화시켰다. 소 전 실장 시절에 비서실은 15개 팀에 250여 명의 인력을 거느린 거대조직으로 커졌다. 기능도 인사 위주에서 재무, 감사, 기획, 국제금융, 홍보 등으로 다양해졌다. 소 전 실장 시절 삼성의 비서실은 삼성의 중앙정보부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이병철 회장의 전폭적 신뢰 때문에 가능했다. 이병철 회장은 소 전 실장을 비롯해 비서실 직원들에게 ‘회장을 대신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줬다.
숫자에 밝았던 이병철 회장처럼 소 전 실장도 재무능력이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출신의 한 인사는 소 실장에 대해 “면도날 같은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소 실장은 추진력이 뛰어나고 기억력과 분석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이 숨지고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뒤에도 소 전 실장은 3년 동안 더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소 전 실장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돕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소 전 실장을 삼성생명으로 보내며 “그룹 내 최고 공로자”라고 치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이병철 명예회장이 살아있을 때부터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가 키운 2인자와 새로운 1인자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더구나 둘은 1942년생으로 나이도 같았다.
이건희 회장은 “비서실이 조선 500년과 같다”며 “중앙집권적 조직의 폐해를 보여 줬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 삼성그룹 임원 출신 인사는 “소 전 실장이 이병철 회장 시절 이건희 회장의 뒷조사를 했다”며 소 전 실장이 이건희 회장을 견제해 둘의 관계가 틀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취임 초기 완전히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열사 사장들이 소 전 실장의 눈치를 먼저 살핀 점이 이 회장으로 하여금 소 실장을 내치기로 결심하도록 한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은 소 실장을 쳐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의 전직 고위임원은 “소 실장을 경질해도 반발할 수 없도록 개인비리나 약점을 조사하고 증거를 확보했다”며 “소 실장을 경질하던 날 삼성 비서실 직원들을 소 실장 자택으로 보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서류와 자료들을 모두 걷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 전 실장은 삼성생명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고문을 맡다가 2005년 9월 63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