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의 편법적 승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경영권 승계에 대한 규제완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8일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가 내놓은 '해외 대기업의 승계사례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대기업 승계를 원활화하기 위해 규제완화 등의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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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국경제인연합 산하 연구기관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 상속세 부담이 커 기업승계 과정에서 지배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적정한 상속세를 부담하는 등 투명하고 합법적인 대기업 승계방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와 달리 해외 대기업들은 다양한 제도를 활용해 상속세 부담을 줄이면서 합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포드와 BMW, 헨켈 등 100년 이상 장수하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다양한 제도 덕분에 합법적으로 경영권 승계를 이어왔다”며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편법승계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포드사의 경우 포드재단에 대한 주식출연과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해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고 경영권을 유지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진이나 최대주주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 안정을 도모하는 제도다. 창업주인 포드 집안이 소유한 지분은 7%에 불과하지만 차등의결권 제도에 따라 4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일본 등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BMW의 경우 다양한 회사형태를 보장하는 독일의 회사법을 활용했다. BMW는 유한합자회사 형태의 BMW 오너일가는 지분관리회사를 설립한 뒤 자녀에게 직접 지분을 증여하지 않고 지분관리회사의 지분을 자녀에게 6년에 걸쳐 증여해 상속증여세 부담은 줄이면서 경영권을 승계했다.
글로벌 생활산업용품 기업인 헨켈은 1985년 가족지분풀링협약을 체결해 승계과정에서 지분율이 희석되는 것을 방지했다. 가족지분풀링협약에 따르면 협약 당사자 가족 주주들은 협약대상으로 묶여있는 주식을 매각할 때는 다른 가족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매입권을 부여하거나 그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독일 법원은 헨켈의 사례와 같은 가족협약에 대해 민법상 조합으로 법적지위를 인정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승계에 대해서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통해 기업승계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대기업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제도가 없다”며 “도리어 상속증여세법 조항에 따라 공익재단 출연주식규제, 지배주주 주식 할증 평가 등의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업상속공제제도란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의 경우 가업 상속재산 가운데 최대 200억 원, 15년 이상은 최대 300억 원, 20년 이상은 최대 500억 원까지 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