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을 방문한 미국 하원의회 대표단이 2월19일 타오위안공항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만 외교부>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미국 하원의회 대표단이 장중머우 TSMC 창업주와 만나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했다.
장 창업주가 지난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향해 미국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한 만큼 이번 회담에서 추가 투자와 구체적 지원 방안에 관련한 내용이 논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대만 타이페이타임스는 21일 “미국 의회 대표단이 장 창업주와 만나 미국과 대만 사이 제조업 발전과 기술 혁신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미국 하원의원 4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19일부터 5일 동안 대만을 방문하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주요 기업 경영진을 만나는 등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장 창업주가 미국 의회 대표단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제조업과 기술 발전에 대한 주제로 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TSMC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와 관련한 세부 내용이 거론되었을 공산이 크다.
TSMC는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당초 12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최근 투자 규모가 400억 달러 이상으로 늘어났다.
미국 하원의회 대표단은 캘리포니아주와 매사추세츠주, 일리노이주와 텍사스주 소속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반도체 투자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이 장 창업주와 만난 목적은 TSMC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는 데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TSMC가 미국에 반도체 생산공장 또는 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해 대만과 미국 사이 기술 협력에 더 크게 기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로 칸나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의 지역구는 미국 IT산업 중심지인 실리콘밸리를 포함하고 있다. 그는 대만을 방문하기 전 반도체산업과 관련해 더 많은 계획을 공유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이미 실리콘밸리에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 최대 경쟁사인 TSMC도 뒤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설득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TSMC는 대만 정치권의 반발을 고려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설립하지만 핵심 기술을 연구하는 시설은 대만에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뚜렷하게 앞세우고 있다.
반면 미국은 TSMC의 미국 연구센터 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에 활용되는 예산 규모는 520억 달러에 이르는 데 이 가운데 390억 달러는 공장 투자 보조금으로, 132억 달러는 연구개발센터 설립 지원금으로 활용된다.
TSMC가 미국에 반도체 기술 연구센터를 설립한다면 시설 투자 지원금에 더해 이중으로 수혜를 노릴 수 있다.
텍사스주 등 다수의 반도체 생산설비가 위치한 지역에 TSMC가 새 공장을 설립하도록 하는 방안도 의회 대표단과 장중머우 창업주 사이 대화 주제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TSMC가 미국에 더 많은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보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장 창업주는 최근 TSMC의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미국 공장 투자는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일”이라고 말하며 현재 진행되는 건설 계획을 두고 긍정적 시각을 보였다.
TSMC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해 반도체 생산지를 다변화하는 일이 필수적인 만큼 미국 의회의 추가 투자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다만 그는 미국 정부나 의회 차원에서 TSMC의 투자를 지원하는 정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있다.
장 창업주는 지난해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을 언급하며 “500억 달러 정도의 예산은 좋은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목표한 대로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면 반도체 지원법에 포함된 예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펠로시 의장은 최근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장 창업주의 해당 발언을 전하면서 “그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 창업주가 TSMC의 미국 반도체 투자 과정에서 더욱 강력한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만으로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안일한 생각에 불과하다며 더욱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하원의회 대표단이 장 창업주와 만나 반도체 협력을 논의한 것은 결국 지난해 펠로시 의장과 진행했던 회담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TSMC가 미국에 새 반도체공장 또는 연구개발센터를 추가로 투자하고 미국 정부와 의회는 지원을 더욱 강화할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총통도 TSMC의 투자를 통한 대만과 미국의 외교 관계 강화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의회 대표단과 이러한 내용을 추가로 논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