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텔이 2나노 이하 반도체 파운드리 미세공정 신기술을 삼성전자보다 먼저 도입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인텔의 EUV 반도체 생산공정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미세공정 파운드리에 쓰이는 ASML의 EUV(극자외선) 반도체장비 가격이 기술 발전에 따라 더욱 높아지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기업에 자금 부담이 커졌다.
인텔은 2나노와 1.4나노 등 차세대 공정 기술을 삼성전자보다 먼저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EUV장비 수급 조건이 이들의 속도 경쟁에 큰 변수로 자리잡을 수 있다.
13일 IT전문지 WCCF테크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2024년 2나노(20A) 미세공정을 도입하는 데 이어 2025년 1.8나노, 2026년 1.4나노, 2028년 1나노 공정을 잇따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WCCF는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 IMEC 보고서를 인용해 인텔의 새 공정 기술 개발이 ASML의 EUV장비 기술 발전을 이끄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인텔이 삼성전자와 TSMC를 제치고 미세공정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기업으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텔이 2나노 공정 상용화를 목표로 둔 시점은 삼성전자나 TSMC보다 6개월~1년 정도 앞서 있다. 1.4나노 공정 도입 시기는 삼성전자가 계획하고 있는 2027년보다 1년 더 이르다.
WCCF테크는 “인텔은 앞으로 수 년 동안 신규 공정 도입 계획을 지켜갈 것으로 예측된다”며 “다만 미세공정 기술 발전에 따라 EUV장비 가격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기업이 현재 ASML에서 사들이는 EUV장비 가격은 한 대당 1억5천만 달러(약 1900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가격은 앞으로 최대 4억 달러(약 5100억 원)까지 높아질 수 있다.
ASML이 반도체 생산성을 높인 신규 장비를 출시하며 가격을 꾸준히 높이고 있는 데다 2나노 미만 공정에 쓰일 차세대 하이NA EUV장비 단가는 기존 제품보다 2배 이상 비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EUV장비 가격이 높아지는 원인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산 원가 상승과 반도체장비의 높은 수요, ASML의 시장 전략 등 다양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기업은 최근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맞춰 현지에 공장 투자 계획을 구체화하며 시설 투자 규모를 이전보다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자연히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장비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데 유일한 공급사인 ASML이 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한정적이다.
더구나 ASML이 미국 정부의 규제로 주요 시장인 중국에 반도체장비를 공급하기 어려워지면서 실적에 타격을 받게 되면 EUV장비 가격 상승을 통해 이를 만회하려 할 공산이 크다.
ASML이 올해 말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EUV E모델은 기존의 D모델 대비 가격이 40% 가까이 높아지는 반면 생산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고가 장비에 반도체기업들의 수요가 몰릴 공산이 크다.
결국 인텔과 삼성전자, TSMC 등 주요 파운드리업체의 미세공정 속도 경쟁에서 EUV장비 구매 여력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당 기업들이 해마다 구매하는 EUV장비는 각각 수십 대 수준인 만큼 이를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만 수 조 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텔과 같은 기업이 자금 부담으로 첨단 EUV장비 구매에 한계를 맞는다면 삼성전자와 TSMC 등 경쟁사가 미세공정 생산라인 투자에 더 앞서나가며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다만 첨단 공정 기술로 충분한 잠재적 고객사의 수요를 자신하기 어려운 기업은 신형 장비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률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지 못 하면 투자 금액이 불어난 데 따른 리스크도 그만큼 커진다.
결국 미세공정 기술 속도 경쟁이 투자 여력과 파운드리 고객사 수요 등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인텔이 우위를 자신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는다.
인텔이 실제로 새 공정 기술을 계획대로 도입할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인텔이 목표로 한 미세공정 기술 상용화 속도는 삼성전자와 TSMC 등 파운드리 상위 경쟁사와 비교해 두 배 정도 빠른 수준이다.
반도체기업들의 파운드리 투자에 따른 비용 부담이 고객사와 소비자들에 전가된다면 최신 미세공정 기반 반도체의 수요가 낮아져 경쟁에 다소 힘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IMEC는 보고서에서 “반도체기업들은 미세공정 기술 발전 과정에서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며 “가격을 조정해 반도체 제조사업의 지속가능성을 갖춰내는 것도 이 가운데 하나”라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