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고사 위기에 처한 지역 대학을 살리고 지방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자체가 대학교 재정 지원 주도권을 갖도록 바꾼다.
다만 지역 맞춤형 교육개혁이 지역 대학 위기 및 지역소멸을 해결할 근본 대책이 될 수 있을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 윤석열 대통령이 2월1일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교육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의 지역대학 살리기 정책을 두고 지역 대학들의 기대감이 높아진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는다는 '벚꽃 엔딩'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2023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결과를 보면 208개 대학 가운데 14개 대학, 26개 학과의 정시 지원자가 1명도 없다. 14개 대학 모두 비수도권 대학이다.
정시모집 경쟁률이 3대 1에 못 미치는 대학은 68개였는데 59곳(86.8%)이 비수도권 대학이다. 정시모집 지원 기회가 3번인 점을 고려하면 경쟁률 3대 1이 안되는 비수도권 대학은 사실상 '미달'로 봐야 한다.
더욱이 정시모집에서 지원자가 0명인 학과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있다. 2020년 3개, 2021년 5개에 불과했으나 2022년 23개로 급증했다. 올해는 26개로 4년 전보다 8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대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대학교는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일자리·소득 등 경제적 기회를 비롯해 사회·문화적 기회도 제공한다. 수도권에 비해 각종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선 대학의 영향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학령인구 감소가 예정된 상황에서 학생 수가 계속 줄면 지역대학이 경쟁력을 잃고 청년층이 수도권 소재 대학과 기업으로 향하는 현상이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지역 대학이 폐쇄되면 지역 상권과 인력분배 등에 문제를 낳고 결국 지방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월31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지역대학의 문제는 대학의 문제이자 지역의 문제"라며 "대학과 지역이 같이 소멸하는 극단적 위기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지역대학을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의 자율과 창의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들은 과감하게 혁파해 대학 운영 전반에서 혁신이 일어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학 규제를 완화하고 중앙정부가 쥐고 있던 지역대학 지원사업 예산 집행권을 지자체에 넘겨 대학과 지역을 함께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교육부는 1일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1회 인재양성 전략회의를 열고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를 제시했다.
2025년부터 대학재정 지원사업 예산 가운데 2조 원 이상을 지방자치단체 권한으로 넘기기로 했다. 올해부터 2년 동안 라이즈 체계 시범 지자체를 5곳 정도 선정하고 2025년에는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와 함께 비수도권 대학을 대상으로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의 '글로컬 대학'을 선정해 1곳당 1천억 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글로컬 대학은 올해부터 시작해 2027년까지 비수도권에 30개 대학을 선정한다.
2조 원의 예산지원이 지자체 권한으로 넘어가고 1천억 원의 특별지원금이 투입된다고 해서 지역대학 소멸 위기가 당장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자체가 중심이 돼 지방대학을 지역실정에 맞게 육성한다면 지방대학의 특성이 살아나고 지역의 일자리와 연결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 피츠버그는 과거 석탄과 철광석을 기반으로 한 제철 도시로 유명했다. 하지만 로봇 등 첨단분야에 강점을 보이는 카네기멜론대학교와 생명과학 분야에서 유명한 피츠버그대학교 덕분에 현재는 금융·교육·의료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지방을 살리려는 정부의 의지도 강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인재양성 전략회의에서 "교육은 나라 살리는 지역 균형 발전의 핵심"이라며 "특히 지역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의 주요 도시들도 정보기술(IT), 바이오, 디자인 중심 첨단산업을 집중 육성해서 지역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활력을 되찾은 사례가 많이 있다"며 "지역대학, 지역 산업체 그리고 지방정부가 서로 머리를 맞대서 지역의 강점, 비교우위와 성장동력을 찾아내서 힘을 모을 때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교육 행정 전문성이 없는 지자체에 과도한 권한을 주는 데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중앙정부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자체가 대학 발전보다 표심을 우선하게 된다면 지역 내 대학 줄 세우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이 고개를 든다.
교육부 지원 사업은 균등하게 지원되는 편이지만 라이즈 체계는 글로컬 대학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지원을 하는 만큼 소외되는 대학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2027년까지 비수도권에서 글로컬 대학 30곳을 선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비수도권 지방대학 121곳 중 4분의 1 수준이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신입생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지역대학을 지자체가 '명문'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환상일 수밖에 없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