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이 아이폰에 쓰이는 주요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목적은 공급사와 가격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애플 아이폰14와 아이폰14플러스, 아이폰14프로 제품 사진. |
[비즈니스포스트] 애플이 디스플레이와 통신반도체 등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아이폰 등 주요 제품에 탑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한 협력사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애플이 자체 부품 기술을 확보하는 목적은 실제 상용화를 추진하기보다 부품 공급사와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3일 “애플의 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개발 소식이 알려지면서 자체 부품 공급망 구축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뛰어들 지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 주요 제품에 쓰이는 핵심 부품을 협력사에서 사들이는 대신 직접 개발해 활용할 수 있다는 소식은 최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 공급업체에 의존을 낮추기 위해 애플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마이크로LED 패널을 아이폰에 적용하는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통신반도체 전문기업 브로드컴에서 사들이던 와이파이 및 블루투스 칩셋을 이르면 2024년부터 애플의 자체 개발 반도체로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애플이 이처럼 주요 부품을 내재화하는 데 주력하는 배경은 공급망 차질 사태나 부품 공급사와 관계 악화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및 부품 제조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거나 물류난 등 사태가 빚어지면서 다수의 제조업체가 생산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과거 통신반도체 공급사였던 퀄컴과 기술특허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이면서 5G 아이폰 출시가 삼성전자와 같은 경쟁사보다 늦어지는 등 문제가 발생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결국 생산 원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부품을 개발해 상용화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다면 협력사와 부품 공급단가 협상에 우위를 차지하는 일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애플이 중장기적으로 부품 수급처 다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은 크지만 자체 기술로 이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미 전 세계 부품 공급망이 애플을 중심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직접 개발하는 부품을 통해 이런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은 생산 능력과 원가, 연구개발 투자 비용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과제로 꼽힌다.
애플이 2014년 디스플레이 전문업체 럭스뷰를 인수했을 때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 의존을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결국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중소형 올레드패널 기술력 및 생산 규모가 글로벌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팀 쿡 애플 CEO가 이전부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에만 진출하겠다”는 경영 기조를 앞세워 왔다는 점도 자체 부품 공급망 구축에 힘이 실리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결국 애플이 주요 부품을 직접 개발하는 목적은 부품 공급사들과 협상 전략에 불과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 애플 하드웨어 판매점 '애플스토어' 외관 사진. |
증권사 번스타인도 애플의 자체 통신반도체 개발이 브로드컴과 부품 공급단가 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두 회사의 통신반도체 공급 계약이 올해 마무리되는 만큼 애플이 자체 개발 반도체를 아이폰 등 제품에 적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협상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자체 디스플레이 개발과 상용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도 충분히 한국 디스플레이 협력사를 염두에 둔 선택일 수 있다.
궈밍치 TF인터내셔널 연구원은 최근 애플이 올해 출시하는 아이폰15 시리즈부터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대신 중국 BOE의 패널을 가장 많이 사들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BOE는 디스플레이 패널 공급 단가 측면에서 한국 경쟁업체에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기술력 측면에서는 아직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이 BOE를 아이폰 디스플레이 공급사로 선정한 지 불과 2~3년이 흘렀다는 점도 고려하면 한국 디스플레이업체를 제치고 최대 협력사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이런 소식이 흘러나온 배경도 애플이 삼성디스플레이 및 LG디스플레이와 아이폰용 올레드패널 공급 단가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애플이 이에 더해 올레드보다 한 단계 발전한 기술로 평가받는 마이크로LED 디스플레이 개발에 뛰어든 것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격적 승부수를 던지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애플과 디스플레이 공급 협상에 대응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수 있지만 주요 협력사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애플은 주요 부품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경제적 측면을 최우선 요소로 고려한다”며 “그동안 애플이 핵심 부품을 직접 상용화하는 데 성과를 낸 사례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