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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운 효성 부회장 |
효성그룹이 ‘CEO 공백’이라는 최악의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조석래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에 대해 분식회계 혐의로 해임권고를 결정했다. 조 회장이 담낭암 등으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가운데 그룹을 챙겨온 이 부회장조차 퇴진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조 회장의 장남 조현준 사장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조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경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조 회장의 삼남 조현상 부사장만 재판에서 자유로웠는데 둘째 조현문 변호사가 형제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위험에 노출됐다.
◆ 해임권고 받은 조석래 이상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9일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데 대해 효성 조석래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 등 대표이사 2명에게 해임권고 조치를 내렸다. 증선위는 또 효성에 과징금 20억원도 부과했다.
효성은 1998년 11월 효성물산 등 계열사 합병과정에서 부실자산을 정리하지 않고 승계한 뒤 가공의 유형자산 재고자산으로 대체계상하는 방식으로 자기자본을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증선위는 효성이 2005년부터 최근까지 허위로 계상한 금액이 1조335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효성은 "당시 IMF(국제통화기금)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부방침에 순응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고의적 분식회계가 아니라 단순 회계 계정과목을 변경한 회계 정상화 과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증선위가 조 회장과 이 부회장에 대해 해임권고를 확정함에 따라 효성은 경영권 공백이라는 위기상황을 맞게 됐다. 증선위가 해임권고 조치를 내리면 기업은 이를 이행해야 한다. 조 회장과 이 부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할 것이란 얘기다.
특히 이상운 부회장에 대한 해임권고 조치는 효성그룹 경영에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조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그룹 경영을 책임져온 2인자다. 이 부회장은 1973년 효성에 입사해 2012년 효성 대표이사에 오른 뒤 13년째 CEO 자리를 지켜온 전문경영인이다. 국내 30대그룹 내 최장수 CEO 가운데 롯데쇼핑 이인원 부회장에 이어 2위다. 그는 조 회장 아들들이 경영에 뛰어들 무렵 경영수업을 맡은 스승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효성그룹의 총수 공백을 실질적으로 메워 왔다.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조 회장의 두 아들인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 삼각체제를 이뤄 효성그룹의 경영을 이끌어왔다.
조 회장은 분식회계와 횡령 및 배임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조만간 1심선고를 앞두고 있다. 재계와 법조계는 증선위의 이번 결정이 조 회장의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증선위가 해임권고 조치를 내리고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만큼 조 회장의 혐의내용이 상당 부분 입증됐다고 재판부가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900억 원대 횡령 배임과 1500억 원대 세금탈루를 주도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로 조 회장, 조현준 사장, 이상운 부회장 등 5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문제는 ‘포스트 조석래’의 1순위로 꼽히는 조현준 사장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다. 그렇게 되면 효성그룹의 경영승계는 큰 차질을 빚을 게 뻔하다.
특히 이 부회장도 재판을 받고 있고 최악의 경우 조석래 회장, 이상운 부회장, 조현준 사장이 모두 경영일선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삼남 조현상 부사장이 그나마 재판에서 자유로워 오너 부재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됐는데, 최근 둘째 조현문 변호사가 조현상 부사장까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이조차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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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 조현준 사장(왼쪽)과 삼남 조현상 부사장 |
◆ 효성그룹의 경영권은 어디로 가나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은 그동안 효성그룹의 지주사 격인 효성의 지분을 매집하는 경쟁을 벌여왔다.조현준 사장은 지난해부터 30여 차례 넘게 지분매입에 나선 끝에 지난 1일 조석래 회장을 제치고 효성의 최대주주로 올랐다. 그러나 조현상 부사장과 지분 차이가 1%도 나지 않는다.
효성의 지분은 이달 초 기준으로 조현준 사장이 10.33%, 조현상 부사장이 10.05%, 그리고 조 회장이 10. 32%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형제의 지분매입에 대해 효성그룹 측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차원이라고 일축했다. 효성 오너 일가의 지분이 30%를 약간 넘기는 상황에서 이런 해명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조석래 회장을 비롯해 이상운 부회장, 조현준 사장이 모두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에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조현준 사장이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 경영일선에 물러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언제든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매집해 최대주주에 올랐다는 것이다.
조현상 부사장은 조현준 사장의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조 사장에 버금가는 지배주주의 자리를 확보해 놓으려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형과 지분율 차이를 최대한 좁혀 놓아 아버지 조석래 회장의 선택에 따라 경영권을 물려받을 준비를 해놓았다는 얘기다.
특히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 보유주식의 80% 정도를 담보로 맡겨 돈을 마련해 효성 주식을 계속 사들인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더욱이 조석래 회장은 평소 “향후 경영권은 능력있는 자식에게 물려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전통적 장남 승계방식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둘째인 조현문 변호사가 최근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을 100억 원대의 횡령 및 배임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효성그룹 재판에서 벗어나 있었던 조현상 부사장조차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둘째 조현문 변호사가 효성을 떠날 때 조석래 회장이 후계구도를 명확히 정리했다면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며 “효성그룹이 그룹을 책임질 모든 경영진이 퇴진의 위기에 몰린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